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 (1) - 동아시아 각지의 신석기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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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생활사에 여러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된 변화로 대개 농경과 토기 제작을 꼽습니다. 농경이 인간의 완전한 정착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야생동물을 가축화할 수 있게 되었고, 더 큰 규모의 인간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토기 제작은 인간이 새로이 습득하게 된 기술로 해당 문화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유용한 지표입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토기가 산출되어 지역 문화의 영역 범위, 변화 양상, 문화 사이의 교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앞서의 게시물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서아시아의 역사는 선 작물 재배 후 토기 제작의 수순을 밟는다면, 동아시아의 신석기는 선 토기 제작 후 작물 재배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동아시아의 토기 제작이 어느 지역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학문적으로 결정나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최초의 토기 발견 사례가 후기 구석기까지 올라가고 있어 2만년 즈음에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토기 제작법이 동아시아에 퍼져 나갔을 수 있습니다만, 동아시아의 환경이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토기 제작에 대한 착안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신석기 개시 시점부터 동아시아의 각지는 적극적으로 토기를 제작하였고, 각 지역의 토기 제작 방식은 그 때부터 서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에 단일 계통설이 다계통설을 압도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신석기 동아시아에 성립한 별도의 신석기 문화권은 다음 지도와 같습니다. 앞으로 각 문화권의 특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백지도는  http://spainforum.me/outline-map-of-asia-physical.html/physical-outline-map-of-e-s-asia-within-of  에서 얻었음> 참고문헌 H Kato (2006) - Neolithic culture in Amurland:...

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 (0) - 동아시아 신석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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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나타내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와 비슷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8시간 40분 동안은 대기에 산소가 전혀 없었으며, 저녁 9시 36분이 되기 전에는 육지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 척도로 인간의 20만년에 걸친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나타낸다면 어떨까요. 분명 인간 생활은 하루 종일 큰 변화 없이 처음 등장했을 모습 그대로 땅 위를 돌아다니며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처럼 아늑한 집에서 농작물과 가축에서 생산된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은 한 시간 남짓 뿐인 전통이지요.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생활방식은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는 용어가 붙을 정도로 인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신석기 시대는 바야흐로 인간이 안정적인 정착 생활을 시작하며, 동시에 농경의 시작과 야생 동물의 가축화가 병행해서 진행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최초의 한 지역에서 신석기 혁명이 일어난 후 세계 각지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진전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는 각지의 신석기 문화가 서로 다른 작물을 재배하며, 서로 다른 야생동물을 가축화 하고, 서로 다른 형태로 발전해 나간 것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달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최초의 신석기 문화가 발생한 레반트/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과 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의 발전 양상이 상이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반트 지역은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반정착 생활이 등장하며 그 중 괴베클리 테페는 농경 개시 이전에 이미 상당한 수의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편 레반트 지역의 토기 생산 시기는 농경 개시 시점에서 꽤 지난 시기부터 이루어져 이 지역의 신석기는 토기가 없는 Pre-Pottery Neolithic 시기가 존재합니다. 반면 동아시아 지역은 농경 개시 시점 이...

중국어 역사 음운학 (13) - 상고한어의 초성 자음 재구성(3) (끝)

  ※ 이 글은 반오운潘悟雲 저著, 권혁준 역譯의 "중국어 역사 음운학" 내용의 요약/정리를 바탕으로 몇가지 덧붙여 적는 것입니다. 17장 상고 중국어의 유음과 유음을 동반한 자음의 서열, 19장 *s-를 동반한 상고의 자음서열, 20장 비음의 상고 기원 - 상고한어의 초성 자음 재구성(3) 7. 여러 번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 했습니다만 상고한어의 초성에는 현재의 중국어나 우리나라 한자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특성인 자음군이 존재했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특성은 같은 어족인 티베트어나 버마어의 여러 방언이나 옛 표기법에 자음군이 나타나는 것과 잘 연결됩니다. 중국의 기록에서도 자음군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들이 여럿 있습니다. 가. 해성 관계 各~路~賂, 京~掠~凉 나 합음어 不律 ~ 筆, 窟窿 ~ 孔 하지만 개별 음소에서는 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진 반면 자음군의 재구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 실정입니다. 아래에서는 여러 자료를 토대로 가능성이 확인된 자음군의 사례 몇 개만 제시하겠습니다. a. 전치비음 *N- 비음 N으로 시작하는 어두자음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Baxter-Sagart는 다수의 Hmong-Mien 사례를 들고 있으나 그대로 취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든 티베트어에서는 m-과 ɦ-로 시작하는 자음군이 가능하였고, 반오운은 ɦ-는 ŋ-에서 기원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상고한어 자료에서도 적어도 m-으로 시작하는 자음군이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가. 시경에서 발어사 無 王之藎臣, 無念爾祖 나. mr- 과 r-의 해성관계 命 ~ 令, 麥 ~ 來 b. 전치자음 *s- 마찬가지로 티베트어에서 s-로 시작하는 자음군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위의 전치자음 *N-과 더불어 전치자음 *s-는 광범위한 파생어휘를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되며 전치자음 *N-은 무성자음을 유성자음으로, 반대로 *s-는 유성자음을 무성자음으로 만들어 중고음 시기 한자음에서 유성음과 무성음 사이의 규...

삼국 초기 기록 기년과 계통 문제(1) - 고구려 건국 신화와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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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서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담담하게 서술하지 않은 이상 중립적이고도 사실적인 역사 기록은 환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는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구전 집단으로 참여하여 전승하고 있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동이나 착오에 의해 의도치 않게 사건과 무관한 내용이 후에 첨가되거나 소실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일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기억되고 싶은 내용을 의도적으로 첨삭되기도 합니다. 이는 고대의 역사는 응당 그러해야 하는 서사구조(내러티브)가 중요한 것이지 사건의 역사적인 선후 관계나 진실성은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초기 왕계와 기년, 사건의 사실성 역시 학계에서 여러 층위에서 논의가 이루어졌고 카페에서도 여러 회원들이 이와 관련해 글을 작성한 바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만든 금석문(광개토대왕, 모두루묘지명)과 중국에서 채록한 기록, 국내 기록(삼국사기, 이규보 동명왕편, 삼국유사) 사이에서 일정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고구려의 건국 기록은 신화적인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 신화의 내용은 고구려의 역사적 경험의 변용이 아니라 원래 다른 원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여의 건국 신화는 "① 북쪽의 국가에서 출생 ② 신이한 방법으로 잉태됨 ③ 태어난 아이를 버렸더니 짐승이 범접하지 않음 ④ 장성하자 활의 명수가 됨 ⑤ 남쪽으로 도망가다가 큰 강을 만남 ⑥ 고기와 자라들이 임시 가교를 만들어주어 위기를 모면하고 결국 나라를 건국함"이라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고구려의 건국에 관한 내용은 ①-⑥에서 완전히 동일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건국 신화를 기초로 앞 부분에는 해모수와 금와, 유화라는 다른 신화가 얹혀져 있고 뒷 부분에는 나라 만들기에 필요한 기반을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는지와 관련된 설명이(㉠ 인재의 등용 ㉡ 재지 유력자와 혼인 or 주변 유력자를 실력으로 복속) 덧붙어 있는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원주(2009) 고구려 건국 신화에 부여의 건국 신화에 ...

가야에도 관심을 - 가야연구 맛보기 (23) : 탁순국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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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관국과 탁기탄국을 병합한 신라는 그것으로 멈출 생각이 없었습니다. (계체 25년 - 531년) 3월에 군대가 나아가서 안라에 이르러 걸탁성乞乇城을 쌓았다. (선화 2년 - 537년) 겨울 10월 임진壬辰 초하루 신라가 임나를 침략하였으므로 오토모 카나무라大伴金村大連에게 명령하여 그 아들 이와磐와 사테히코狹手彦를 보내어 임나를 돕게 했다. 이 때 이와磐는 쓰쿠시筑紫(현재의 후쿠오카)에 머물며 국정國政을 잡고 삼한三韓에 대비하고 있었다. 사테히코는 가서 임나를 평정하고 또 백제를 구원했다. (추고 8년 - 540년, 1갑자 인하) 봄 2월 신라가 임나와 더불어 서로 공격하자, 천황이 임나를 구원하고자 하였다. 이 해 사카이베境部臣를 대장군으로 삼고 호즈미穗積臣를 부장군으로 삼아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임나를 위하여 신라를 치도록 명하였다. 이에 곧바로 신라를 향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신라에 이르러 5城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이에 신라왕이 두려워하여 흰 기를 들고 장군의 깃발 아래에 이르러 서서 多多羅·素奈羅·弗知鬼·委陀·南迦羅·阿羅羅 6城을 떼어 주며 항복을 청하였다. 그 때 장군이 함께 의논하여, "신라가 죄를 알고 항복하니 억지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 하고, 곧 (덴에게) 아뢰었다. 천황이 다시 키시吉師 나니와노 미와難波神를 신라에 보내고, 또 키시吉士 나니와노 키쓰이타비難波木蓮子를 임나에 보내어 일의 상황을 살피도록 하였다. 이에 신라·임나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조調를 바치고, 표表를 올려 "하늘에는 신神이 있고 땅에는 덴노가 있으니, 이 두 신을 제외하고 또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앞으로는 이후로 서로 공격하지 않겠으며, 또 배와 노를 마르지 않도록 해마다 반드시 조공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덴노가) 곧 사신을 보내어 장군을 불러 들였다. 장군들이 신라로부터 이르자, 신라가 또 임나를 침략하였다. (흠명 원년 - 540년) 여러 신하에게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

Homo sapiens의 단계통/다계통 논의 보론補論 (+ 약간의 학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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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올라온 모든 후기에서 제 설명이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므로 저의 발표가 실패라는 사실은 증명되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빼서 오신 분들의 기력과 시간, 자본을 날려 먹은 것에 대해 반성하고자 미미한 A/S를 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세계를 분절적으로 인식하고, 잡다한 것을 분류작업을 통해 나열하고 묶어두려는 행동양식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스스로 느끼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생물의 외형에 따라 분류가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 외형적인 특징, 소리, 색, 모습에 근거하여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부여받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느 누군가가 지어줬든지요...) 자연적이고 관습적인 분류는  스웨덴 출신의 학자 린네에 의해서 체계화 되기 시작합니다. 린네는 생물의 분류를 통해 어떤 식으로 '주님'의 창조가 이루어졌는지 잘 알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린네가 분류작업을 시작할 즈음 해부학과 같은 학문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었으나 아직은 직관적인 인상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원숭이와 유인원과 같은 그룹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린네는 이들 사이에서 얼굴, 손, 팔에 있는 유사한 특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특히나 나무늘보도 같은 집단으로 묶었다는 것을 보면 말이죠.) 마찬가지로 인간은  각 지역에 따라 얼굴의 형태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지만 하나의 종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형태나 생활상, 습성이 별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겠죠. 각지의 창조설화에서 인류가 하나의 거푸집에서 태어났다는 발상을 공유하는 것도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람은 서로 같은 족속이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인상에 기반한 분류는 여러 오류를 내포할 수 있게 되는데 자연에는 수렴진화라고 하는 것이 있어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집단이 진화의 결과 형태상 유사한 생김새를 가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인장과 대극과 다육식물, 아르마딜로와 천산...

근친혼은 어떻게 유전병 확률을 증가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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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분들이 피상적으로 근친혼이 유전병을 불러일으킨다고만 알고 있으신데 본격적으로 따져보는 시간을 잠깐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임의의 유전자 A1에 대해서 비정상적인 대립유전자의 집단 내 존재 비율을 a1이라고 합시다. 이 유전자가 상염색체에 존재할 때 동일한 유전자를 2개 가지게 되므로, 본인이 비정상적인 대립유전자를 하나도 가지지 않을 확률은 (1-a1)^2과 같습니다. 인간 전체 유전자의 개수를 N으로 둘 때에(통상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가 2만에서 2만5천 정도로 생각하나 단백질을 암호화 하지 않는 유전자도 있고, 유전자 그 자체도 정의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확정적인 숫자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비정상적인 대립유전자를 하나도 가지지 않을 확률은 (1-a1)^2*(1-a2)^2*....*(1-aN)^2 정도가 될겁니다. a1...aN의 확률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시 (1-a)^2N이 되므로 a가 매우 작다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대립유전자를 하나도 가지지 않을 확률은 0에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중 임의의 유전자 A에 대해 정상적인 대립유전자와 비정상적인 대립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비정상적인 대립유전자는 우성일 수도 있고 열성일 수도 있겠으나 본인은 정상이라고 두기 위해서 열성 대립유전자를 하나 가진 보인자 상태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유전형은 Aa입니다. 배우자 역시 일정 유전자에 대해서 보인자 상태이겠지만 A에 대해서는 모두 정상적인 대립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유전형은 AA입니다. Aa  × AA이므로 자식의 유전형은 AA일 확률이 1/2, Aa일 확률이 1/2입니다. 그러므로 대립유전자 a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1/4가 됩니다. 손자 대에서 대립유전자 a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1/8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인과 자식(1촌)간의 근친혼으로 aa 돌연변이 표현형이 등장할 확률은 1/8, 2촌간의 근친혼은 1/16, 3촌은 1/32, 4촌간은 1/64의 확률이 됩니다. 유전자 A뿐만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