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sapiens의 단계통/다계통 논의 보론補論 (+ 약간의 학회 후기)

 지금까지 올라온 모든 후기에서 제 설명이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므로 저의 발표가 실패라는 사실은 증명되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빼서 오신 분들의 기력과 시간, 자본을 날려 먹은 것에 대해 반성하고자 미미한 A/S를 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세계를 분절적으로 인식하고, 잡다한 것을 분류작업을 통해 나열하고 묶어두려는 행동양식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스스로 느끼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생물의 외형에 따라 분류가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 외형적인 특징, 소리, 색, 모습에 근거하여 저마다 다른 이름을 부여받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어느 누군가가 지어줬든지요...)

자연적이고 관습적인 분류는 스웨덴 출신의 학자 린네에 의해서 체계화 되기 시작합니다. 린네는 생물의 분류를 통해 어떤 식으로 '주님'의 창조가 이루어졌는지 잘 알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린네가 분류작업을 시작할 즈음 해부학과 같은 학문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었으나 아직은 직관적인 인상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원숭이와 유인원과 같은 그룹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린네는 이들 사이에서 얼굴, 손, 팔에 있는 유사한 특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특히나 나무늘보도 같은 집단으로 묶었다는 것을 보면 말이죠.) 마찬가지로 인간은 각 지역에 따라 얼굴의 형태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지만 하나의 종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형태나 생활상, 습성이 별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겠죠. 각지의 창조설화에서 인류가 하나의 거푸집에서 태어났다는 발상을 공유하는 것도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람은 서로 같은 족속이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인상에 기반한 분류는 여러 오류를 내포할 수 있게 되는데 자연에는 수렴진화라고 하는 것이 있어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집단이 진화의 결과 형태상 유사한 생김새를 가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인장과 대극과 다육식물, 아르마딜로와 천산갑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 분류된 것은 이후 각 생물의 생활사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본 후학들에 의해서 정정되게 됩니다.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에 따라 인간 역시 거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학자들 사이에 공유되었지만 화석 증거는 전무했습니다. 이에 고릴라와 침팬지가 있는 아프리카나 오랑우탄이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인간의 기원이 되는 화석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자바원인, 베이징원인으로 알려진 Homo erectus 화석을 19세기 말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인간 진화를 다계통으로 보는 시각이 없었으나 인간의 분포와 인종의 분화를 각 지역의 유인원/원숭이와 연결짓고자 하는 이론이 186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a. 인간은 각 지역별로 인종간 차이가 나타난다. b. 이런 인종특이적인 해부학적 차이를 각 지역에 존재하는 유인원/원숭이의 해부학적인 특징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c. 이에 각 지역의 유인원/원숭이에서 각 지역의 인간이 각각 자연선택 압력을 받아서 현생 인류로 진화했을 것이다. d.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열대지역에 유인원/원숭이가 분포하는 것과 이와 유사한(?) 인간 종족들이 같은 지역에 분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라는 생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대륙이동설/판구조론이 없어 유사한 유인원/원숭이가 넓은 바다로 떨어진 각 지역의 열대지방에 분포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지역에서 등장한 원시 인간-유인원-원숭이 공통조상이 전세계로 퍼져나간 다음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인/유럽인과 침팬지/고릴라로 분화하고, 아시아에서는 각각 아시아인과 오랑우탄으로 갈라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가설은 후에 더 확장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을 아메리카 원숭이와 연결짓는 가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많은 hominid 화석이 세계 각지에서 발굴되고, 판구조론의 등장으로 각 지역의 생물이 어떻게 격리되고 이동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지면서 1940년대에 인간과 각지의 유인원이 연결된다는 다계통 가설은 설자리를 잃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발굴된 화석들이 현대 인류의 조상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멸종된 다른 가지에 속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됩니다. 네안데르탈인을 예로 들자면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유럽인의 직계 선조인지 아니면 방계 선조인지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논의가 다른 hominid 화석에 대해서도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방계 조상의 화석들이 인간 진화 계보에서 빠지게 됩니다.


hominid 진화 가지의 대략적인 형태

아시다시피 죽은 사체가 화석이 되어 후대에 발굴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에 화석 양상은 불충분한 증거입니다. 이를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유전학적인 증거입니다. 멸종한 고인골의 유전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면 이를 현존하는 근연종과 비교해 얼마나 유사한지, 언제 분화가 일어났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기술의 발달로 매우 적은 시료에서도 유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JP Noonan et al. (2006) - Sequencing and analysis of Neanderthal genome, Science

이를 통해 현생인류와 가까워 보이던 네안데르탈인 역시 인류의 직계 선조가 아니라 이미 40만년 전에 따로 분리되어 나간 방계 선조로 수십만년 동안 유럽에서 생존한 종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더 이상 Homo sapiens의 아종인 Homo sapiens neanderthalensis가 아니라 독자적인 Homo neanderthalensis 종으로 재분류 됩니다.

M Kuhlwilm et al. (2016) - Ancient gene flow from early modern humans into eastern Neanderthals, Nature

최근 유전체 분석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친척 hominid의 유전체가 일부 우리에게 섞여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아프리카 밖 현생인류는 약 2% 내외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체를 가지고 있어 인류와 친척 hominid 사이에 혼혈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직접 혼혈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또 다른 방계 선조가 그 사이를 매개했을 수도 있습니다.(예를 들어 방계 선조와 네안데르탈인이 혼혈, 혼혈된 자손 방계 선조와 우리의 선조가 혼혈이 일어나 네안데르탈인 유전체가 함께 넘어옴)

이 글 역시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 애매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미진한 발표보다는 낫길 바라면서...


+ 학회 후기

1. 부흥 카페의 성비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나 합니다.
2.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제가 이 카페에서 늙은이 축에 속한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습니다.
3. 학회 체계가 잡혀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앞으로의 부흥 학회 발전 양상이 기대됩니다.
- 학회 준비해 주신 위원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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