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한자어 발음을 위해 창제되었을까.

 저는 본질적으로 훈민정음의 창제동기를 어제 서문에 제시되어 있는 틀 밖에서 찾아 보려고 하는 시도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제시한 그 너머를 분석하는 것은 세종의 본성이나 당시의 시대정신에 다가가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ad hoc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삐딱한 마음을 가지고 오로지 '훈민정음이 한자어 발음 표기를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주장을 공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훈민정음(+동국정운)의 한자어 표기 체계가 당대 한자어 음 습득에 도움이 되긴 한가?

훈민정음(+동국정운)에서 제시한 한자어 표기 체계가 얼마 가지도 못해서 망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한자음 체계와 동떨어진 체계를 만드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한국한자음은 ㄱ/ㅋ-ㄷ/ㅌ-ㅂ/ㅍ의 2대립 구조인데 어거지로 중국어 전탁음(유성음) 출신 한자어는 일부러 병서하여 ㄲ, ㄸ, ㅃ를 쓰자고 하는 식인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입성 -t가 한국한자음에서는 -l로 실현되는 것은 이영보래로 억지로 처리한다고 했지만 중국음 견모(見母)[k], 계모(溪母)[kʰ], 효모(曉母)[x], 갑모(匣母)[ɣ]의 한국한자음에서의 혼란 양상-이 4 음운이 규칙성 없이 ㄱ/(ㅋ)/ㅎ로 분산되어 정착한 양상-에는 손도 대지 못해서 쾌夬운을 제외하고는 ㅋ으로 시작하는 한자음을 설정하지도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두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근데 이런 상태의 훈민정음이 한자어 습득을 위해서 탄생했다고요?

2. 그럼 당대 중국어 습득에는 도움이 되긴 한가?

그럼 일부러 불편함을 유발한 한자어 표기 방법이 당시 중국어의 원음을 추가로 반영해서 그런 것인가? 훈민정음의 체계는 당말-북송대에 성립된 36자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그에 대한 일괄적인 음운 정립을 시도한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근데 조선이 건국된 원명교체기의 중국어는 이미 중고한어의 시기를 지나 만다린 단계로 진입한 상태로 음운이 다 변화하여 훈민정음식 표기대로 읽으면 듣는 중국인은 '음... 내가 모르는 다른 지역 발음법인가?' 했을 겁니다. 훈민정음에서 기껏 전탁음에 ㄲ/ㄸ/ㅃ/ㅉ/ㅆ을 배정하였습니다만 이미 당시 중국어는 유성음이 무성음화 하여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3. 훈민정음 체계가 36자모에 완전히 종속적인가?

36자모에 각각의 음소를 배당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을 보면 얼핏 현재의 IPA 용도로 글자를 만들어 한자음에 배정하고 이를 다시 한국어 표기에 가져다 쓴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그러했다면 한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음소라도 먼저 36자모에 글자를 배당하고 그 중에서 한국어 음과 일치하는 글자를 가지고 표기에 활용하면 되는 일입니다. 굳이 같은 ㅅ, ㅈ, ㅊ 형태를 확장하여 삐침의 길이로 치두음과 정치음을 표기하려 하거나 ㅂ, ㅍ을 확장하여 순경음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훈민정음 체계는 불청불탁음을 기본 원형으로 삼아 획을 덧붙이거나 글자를 겹침으로써 음가를 확장해 나가는데 옛이응ㆁ는 분명히 어금닛소리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금닛소리의 기본 원형 문자는 k음에 배당되었습니다. 36자모의 번안으로 시작한 것이었으면 이러한 변격을 상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훈민정음이 서문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과연 백성을 위해서 창제하셨겠나는 식의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임금이 건강을 해쳐가며 문자체계를 만드는 일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한자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세종대왕 본인의 언급이 아닌만큼 더 많은 증거와 논의를 반드시 다루고 포함해야 합니다. 그런 작업 없는 주장은 음모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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