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역사 음운학 (6) - 형성자의 원칙

 ※ 이 글은 반오운潘悟雲 저著, 권혁준 역譯의 "중국어 역사 음운학" 내용의 요약/정리를 바탕으로 몇가지 덧붙여 적는 것입니다.


한자를 공부하신 분들은 형성자들이 대개는 음이 같지만 형성자라 하더라도 그 음이 조금씩 다른 것들도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 중 일부는 한국에 한자음이 들어오면서 변화하여 그런 것도 있지만 중고한어 시기부터 이미 별개의 음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음이 아닌데 어째서 굳이 음이 다른 글자를 가져와서 형성자를 만들었는지가 상고한어 연구의 시작점입니다.


8장 해성諧聲(형성形聲)의 원칙

한자는 육서(六書)라 해서 한자가 만들어지게 된 경위가 서로 다른 6가지의 한자 생성 방식이 있습니다.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가 그것입니다. 이 중 형성과 가차는 원 글자의 음을 빌어 생성된 것이므로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의 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별개의 두 한자가 서로 가차가 가능하여 해성과 이독異讀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켜 통전通轉이라 하며 상고한어 재구의 기초가 됩니다.

이런 통전 현상은 현대적인 음운학이 발생하기 이전인 청대 중국 학자들에 의해서 이미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성모initial가 유사한 쌍성雙聲과 운부final가 유사한 첩운疊韻 관계에 있는 두 한자는 해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의를 도출해 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통전 가능 범위를 넓게 잡았기 때문에 A와 B가 통하고 B와 C가 통하고, C가 D가 통하면 통전 되었다고 볼 수 없는 A와 D도 서로 통전 관계가 되어 버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후대의 학자들은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해서 해성 가능한 범위를 제한하고 규정하고자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Li Fang-Kuei(이방계, 李方桂)는 a. 상고의 조음부위가 동일한 폐쇄음stop(예를 들어 d-t, b-p, g-k의 관계)은 서로 해성할 수 있다. b. 상고의 설첨 파찰음(ts 나 dz)이나 마찰음(s나 z)은 서로 해성할 수 있으나 설첨 폐쇄음(t, d)과는 해성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상고한어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지 못해 중고한어를 기반으로 먼저 해성 연구가 시도되었고, 이에 중고한어 재구 형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해성 관계가 여럿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膠(아교 교, 見母 k)와 繆(얽을 무, 明母 m), 丙(세번째 천간 병, 幇母 p)과 更(다시 갱, 見母 k), 勺(국자 작, 禪母 dʑ)과 豹(표범 표, 幇母 p)·的(과녁 적, 端母 t)·約(맺을 약, 影母 ʔ)·礿(봄 제사 약, 以母 j)·䶂(쥐 이름 표, 精母 ts) 사이의 해성 관계가 그러합니다. 이는 중고한어에서의 한자 음 관계와 상고한어의 한자 음 관계가 매우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해성 관계의 분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해성이 일어나는 두 한자가 동일한 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조음 부위가 동일한 폐쇄음끼리 해성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상고한어에는 p, pʰ, b 음소가 별도로 존재했지만 p, pʰ, b음을 가지는 한자 사이에는 그 음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해성 관계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상고한어 시기에 각 한자의 발음이 어떠했을까라는 것은 중고한어의 운서韻書 자료와 민閩방언을 참고해서 그 음을 추정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상고한어 시기의 한자는 하나의 글자에 여러 독음이 있는 이독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현대의 중국어는 analytic langauge로 거의 대부분의 어휘가 독립된 형태소로 문장 안에서 변형이 일어나지 않지만 상고한어 시기에는 여러 종류의 굴절inflection이 가능한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한자 안에 여러 음이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 중 하나의 음과 일치하거나 유사하면 가차나 해성이 가능합니다. 그 중에서는 其(*gə)와 箕(*kə)의 관계와 같이 해성 관계가 자연스러운 예도 많이 있지만, 二(*nij-s)의 파생 어휘 次(*s-n̥ij-s)에서 만들어진 형성자 咨(*tsij)와 같은 경우 咨의 음은 次와 이어질 수 없습니다. 咨의 口변은 그러한 음성 차이를 나타내는 표지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성 관계는 결코 동등한 음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해성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분명이 어떤 음의 상관관계는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현재까지의 상고한어 해성의 상관관계 연구에 대해서 몇 가지 예시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Zhengzhang Shangfang(정장상방, 鄭張尙芳)은 대명사 吾(*ŋˁa), 汝(*naʔ), 夫(*pa), 胡(*ɡˁa)가 각각 대명사 我(*ŋˁajʔ), 爾(*ne(j)ʔ), 彼(*pajʔ), 何(*ɡˁaj)와 대응관계가 있으며 구개음화 운미 j가 강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Pan Wuyun(반오운, 潘悟云)은 여기에 덧붙여 지시대명사 余(*la), 汝(*naʔ), 女(*nraʔ), 者(taʔ), 居(*ka), 是(*deʔ), 彼(*pajʔ)와 台(*lə), 而(*nə), 乃(*nˁəʔ), 之(*tə), 其(*ɡə), 時(*də), 匪(*pəjʔ) 사이의 대응관계가 있으며 후자가 전자의 모음이 약화된 형태임을 주장하였습니다.

- 상고한어에서 유성음과 무성음 사이에는 해성, 가차, 이독이 대량으로 존재하며 대체적으로 무성음 성모는 사동使動의 의미를 가지고 유성음 성모는 주동主動의 의미를 가집니다.
a. 敗 : 薄邁切(竝母 유성음 b) - 스스로 깨지는 것 
        補邁切(幇母 무성음 p) - 다른 사람을 무찌르는 것
b. 折 : 常列切(禪母 유성음 ɖʐ) - 구부러지다
        旨熱切(章母 무성음 tɕ) - 꺾다
c. 別 : 皮列切(竝母 유성음 b) - 떠나다
        方別切(幇母 무성음 p) - 나누다(서로 떨어뜨려 둘로 만들다)
d. 著 : 直略切(澄母 유성음 ɖ) - 붙다
        張略切(知母 무성음 ʈ) - 입다/신다/쓰다(옷을 몸에 붙이다)
e. 解 : 胡買切(匣母 유성음 ɦ) - (자동적으로) 해결되다
        佳買切(見母 무성음 k) - (해소하여) 없애다/흩뜨리다
f. 壞 : 胡怪切(匣母 유성음 ɦ) - 무너지다/부서지다
       古壞切(見母 무성음 k) - 무너뜨리다, 헐다
g. 斷 : 徒管切(定母 유성음 d) - 나뉘다
        都管切(端母 무성음 t) - 자르다, 끊다
h. 屬 : 市玉切(禪母 유성음 ɖʐ) - 붙다/비슷하다
        之欲切(章母 무성음 tɕ) - 엮다/잇다
i. 卷 : 巨員切(群母 유성음 g) - 굽다
       居轉切(見母 무성음 k) - 말다.
j. 盡 : 慈忍切(從母 유성음 dz) - 다하다/끝나다
       卽忍切(精母 무성음 ts) - 도달하다
※ 佚(=逸, *lit, (스스로 없어진다는 의미에서) 달아나다)와 失(*l̥it, 잃다), 施의 이독 以豉切(羊母 j, 옮길 이)과 式支切(書母 ɕ, 베풀 시)의 관계 역시 (*laj - 영향이 미치다)와 (*l̥aj - 베풀다) 사이의 주동/사동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생각됩니다. 더 나아가 施가 也(*lajʔ)를 음音부로 가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 상고한어에서는 유성 비음(n, m, ŋ)과 무성 비음(n̥, m̥, ŋ̊)의 대립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두 비음군 사이는 해성이 가능합니다.
a. 能(*nˁəŋ) ~ 態(*n̥ˁə-s)
   如(*na) ~ 恕(n̥a-s)
b. 墨(*C.mˤək) ~ 黑(*m̥ ˤək)
   夢(*C.məŋ-s) ~ 薨(m̥ˁəŋ)
c. 堯(*ŋˁew) ~ 燒(*ŋ̊ew)
   鬳(*ŋar-s) ~ 獻(*ŋ̊ar-s)

- 상고한어는 (아마도 접두사에서 기원한) 부음절이나 자음군이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도 서로 해성 가능합니다.
a. *s- : 亡(*maŋ) ~ 喪(*s-mˁaŋ)
b. *N- : 葛(*[k]ˤat ) ~ 渴(*Nə-kʰˁat)
          骨(*kˁut) ~ 滑(*Nə-ɡˁrut)
c. *p- : 彔(pə.rˁok) ~ 錄 (*rok) ~ 剝(*pˤrok)
         聘(*p.leŋ-s) ~ 騁(*l̥reŋ).
 Nicholas Bodman은 八(*pˁret)의 pˁ는 접두사라 주장하였는데 티베트 문어文語에서는 brgjad(<*b-riat)이고 버마의 Mizo어에서는 (Pa)riat이며 버마어에서는 ရှစ်(hrac, 음의 변화가 일어나 현재는 ʃɪʔ으로 발음)이므로 어근 r-과 접두사 p-로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d. *K- : 與(*C.ɢaʔ) ~ 擧(*[k](r)aʔ) 
e. *Q- : 壹(*ʔit) ~ 懿(*q<r>i[t]-s)

- 상고한어에서는 접미사 -s가 붙어서 명사를 만듭니다. 이 접미사 -s는 중고한어의 거성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量(呂張切, *[r]aŋ) ~ 量(力讓切, *[r]aŋ-s)

- 접요사infix *-r-가 있을 수 있습니다.
袍(*m.pˁu) ~ 胞(*pˁ<r>u), 至(*tit-s) ~ 致(*t<r>i[t]-s)

이렇게 상고한어, 더 나아가 한장어족을 통째로 놓고 분석하게 되면 한자의 뜻과 음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게 되는지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상고한어 재구음은 반오운 책에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Bexter-Sargat (2014)년 재구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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