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역사 음운학 (3) - 중뉴
※ 이 글은 반오운潘悟雲 저著, 권혁준 역譯의 "중국어 역사 음운학" 내용의 요약/정리를 바탕으로 몇가지 덧붙여 적는 것입니다.
운서韻書에서 한자를 분류하는 방식은 성모聲母와 운모韻母를 쪼개어 이를 반절상자·반절하자로 나타내고 이 기준에 따라 글자를 분류하고 나타내었다 말씀드렸습니다. 운서의 음 분류 최종 단계가 소운小韻이라 해서 음이 동일한 한자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모은 것입니다. 즉, 같은 소운에 속한 한자는 같은 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운서에서 제시한 성모와 운모가 같은데, 즉, 반절상자와 반절하자는 동일한데 같은 소운으로 묶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모를 뉴紐라고도 말하기 때문에 성모를 겹쳐서 사용한다 해서 중뉴라고 부릅니다.
중뉴는 모든 음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 중 순음(입술소리, b/p류), 아음(어금닛소리, g/k류), 후음(목구멍소리, h류) 다음의 운모 支·脂·祭·眞·仙·宵·侵·鹽에서 나타납니다. 이 운모들은 전설(前舌front)모음으로 재구되고 있습니다.(ex. i, e, ɛ) 이런 중뉴 현상을 배려하여 운도韻圖에서는 반절하자가 같더라도 등위를 나누어서 3등과 4등에 배열해 놓았습니다. 이 때 4등위에 배열된 소운을 A류 혹은 갑甲류라고 부르고, 3등위에 배열된 소운을 B류 혹은 을乙류라고 합니다.
중뉴의 음성적인 차이에 대해서 칼그렌을 비롯한 초기 학자들은 고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지속되면서 과거의 운서나 운도가 아무런 이유없이 서로 다른 음으로 분류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를 알게 되었습니다.
1. 당대 자료인 안씨가훈에서 岐의 독음에 奇(B류)와 祇(A류) 두 개가 있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음
2. 한국, 일본, 베트남의 한자어에서 중뉴 4등(A류)와 중뉴 3등(B류)가 서로 다른 음으로 정착됨
<중세한국어 한자음에서 중뉴 한자음이 반영된 예시의 일부>
음성적인 차이가 과연 어떤 자질 때문에 나타났을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지만 개음medial의 차이로 변별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따라서 성모initial와 압운을 위한 분류인 운韻(nucleus-coda-tone)이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두 음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중뉴의 A류와 B류가 어떤 개음medial을 가지고 있어서 음성적인 차이를 나타내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약간은 갈리지만 어찌되었는 A류를 더 전설front적인 개음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i vs ï, i vs ɪ, i vs ɯ 등등) 이 개음의 음성적인 자질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 일본 한자음과 중국어 방언의 증거
a. 한국한자음
ㄱ. 지섭止攝 개구開口 중뉴 4등(A류)는 대개 'ㅣ'(i) 모음으로, 3등(B류)는 대개 'ㅡ'(ɯ/ï)나 'ㅢ'(ïi) 모음으로 전사
ㄴ. 지섭 합구合口에서는 일관적인 대응관계가 나타나지 않지만 모음에 'ㅣ'나 'ㅠ'의 빈도가 높아 반모음j(i)에 해당하는 개음이 공유되고 있음
ㄷ. 제祭·선仙·설薛·염鹽·엽葉운의 한국한자음 대응에서 개구의 경우 중뉴 4등 한자음에 반모음 j(i)가 등장하고, 합구의 경우 중뉴 4등 한자음은 반모음 j(i)가, 중뉴 3등 한자음은 반모음 ɯ(u)가 등장함
ㄹ. 중국방언에서 중뉴 4등에 개음 i가, 중뉴 3등에 개음 u가 등장
2. 일본한자음
ㄱ. 만요가나에 나타나는 상대특수가나上代特殊仮名에서 역시 갑류와 을류로 대비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중뉴의 음가 변별이 그대로 지켜짐.
ㄴ. 일본 오음吳音에서 중뉴 4등의 모음은 -i-로 실현되며 중뉴 3등은 -o-로 실현
ㄷ. 중국방언에서 중뉴 4등은 i로 중뉴 3등은 u, ɯ, y로 등장해 4등(A류)가 전설front적, 3등(B류)가 후설back적임
2. 베트남 한자어에서의 증거
- 중뉴 4등 순음 글자는 설치음화(t, s, th, d 등)가 발생
3. 고문헌에서의 증거
ㄱ. 혜림慧琳의 《음의音義》에서 선仙운 중뉴 4등은 선先운과 통합되며 선운 중뉴 3등은 원元운과 섞임. 선운의 주主모음 재구음은 ɛ로 전설모음, 원운의 주主모음 재구음은 ʌ로 후설모음
ㄴ. 《중원음운》에서 중뉴 3등 悲碑陂皮彼鄙筆密은 제미齊微운의 합구(uei)에 속하게 되었고, 중뉴 4등 脾比匕畀必畢蜜은 제미운의 개구(i)에 속하게 됨
중뉴가 있는 3등위 한자음이 개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재구되므로, 중뉴가 등장하지 않지만 동일한 반절음을 공유하는 설치음의 3등위 한자음 역시 개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설치음은 그 발음 방법상 혀가 입천장의 특정 위치에 가까이 가기 때문에 두 개음의 변별이 매우 어려우므로 중뉴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러우며 발음하는 혀의 위치에 따라 혀가 입 앞쪽으로 오는 설면음은 A류와 주로 계련系聯하며 입 뒤로 가는 권설음은 B류와 주로 계련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의가 성숙해지면서 과거 중뉴에 해당하지 않은 운韻도 실제로는 중뉴의 대응관계와 동일하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경섭梗攝의 경庚운 3등과 청淸운이 중뉴관계로, 증섭曾攝의 증蒸운(입성入聲 직職운)이 통섭通攝의 일부 동東운(입성 옥屋운)과 중뉴관계, 유섭流攝의 우尤운과 유幽운이 중뉴관계(모두 앞의 운이 B류, 뒤의 운이 A류)에 있다고 보입니다.
참고) 히라야마 이사오(2013) 이준환 역, "중고한어의 음운", '구결연구' 31, 19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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