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역사 음운학 (1) - 절운과 운서

 ※ 이 글은 반오운潘悟雲 저著, 권혁준 역譯의 "중국어 역사 음운학" 내용의 요약/정리를 바탕으로 몇가지 덧붙여 적는 것입니다.


동아시아 여러 언어들은 독자적인 문자 창제 시기가 상당히 늦기 때문에 고대의 형태는 한자 음차 자료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자 역시 음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중국어 음을 복원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에 고대 중국어의 음 복원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1장 절운切韻의 성격

절운이라고 하는 것은 수나라 때의 육법언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운서韻書입니다. 절운 이전에도 운서는 있었으나 그 이전의 운서는 전혀 전해지지 않습니다. 절운 역시 일부분만 현대에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이전의 운서를 절운이 집대성 하였고 후대의 운서들은 이 절운을 모범으로 삼아서 편찬하였기 때문에 중국어의 음가 복원에서 절운이 가지는 위상은 매우 높습니다. 이에 근대적인 비교음운학 방식으로 중국어 음가 재구를 시작한 Karlgren 역시 절운을 중고한어 재구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이 절운이 a. 특정한 지역의 방언을 토대로 구성된 것인지, b. 그렇다면 그것이 장안 인근일 것인지, 그리고 c. 장안 방언이 후대 중국어의 직계 조상인지의 여부는 꽤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특정 지역의 방언 여부 논쟁은 절운이 제시하는 음이 이상적으로 제시된 것이거나 여러 지역 방언의 음을 모아 놓은 결과물이기에 실제 중고한어의 음과는 차이가 있지 않느냐는 논의로 만약 그러하다면 절운을 위시한 운서를 토대로 한자음을 재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특정 지역의 방언이 아니라는 측의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절운의 음운 수가 매우 많은데 현대 중국의 어느 방언도 이렇게 풍부한 변별 음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 다루게 될 상고한어의 변별 자질보다 많은 상황인데 중기의 변별 음소만 갑자기 증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2. 절운의 머리말에서 이르기를 "(절운 이전의 운서가 제각각임을 말하며) 강동의 음은 하북과 또 다르다. 이로써 남북지역간의 차이와 고금의 시대에 따른 차이를 논의하여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들을 더 고르고 엉성한 것들은 삭제했다."라고 하여 특정 지역 방언을 전적으로 추종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3. 절운의 주注(註)에서 "합한 것을 따르지 않고 나눈 것을 따른다"라 하였는데 과거의 운서에서 제시된 분류 중 가장 세밀하게 나눈 것을 종합하였기에 변별되는 음운이 아니라 변별되어야 하는 음운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음운학자들은 절운이 특정 지역(아마도 장안과 낙양 사이)의 중고음을 반영한 것이다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합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당시 사대부 계층의 독서음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절운의 음 분류 기준

절운과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는 당대 여러 지역의 방언에서 음이 변별되지 않는 양상을 비판하고 올바른 음을 제시하려고 한 정황이 나타납니다. 이는 전통적인 독서 방식은 글을 정말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므로 그 발음법 역시 대대로 전수되며 당대의 구어와 일정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 지역의 운서들이 기준으로 삼는 음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각 운서들 제시하는 체계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지금과 같은 발음기호가 없기 때문에 반절反切이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A의 음은 B의 성모聲母(초성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와 C의 운모韻母(중성+종성)를 합하여 발음한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사용하는 성모와 운모의 목록은 각 운서별로 이질적이지만 이것을 통해 분별되는 음으로 제시하는 체계가 유사한 것은 실제 음성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운서에서 제시된 음운이 가공의 무언가였다고 한다면 반절에 사용되는 글자가 변별된다고 제시한 목록에 중복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현대 한국어는 ㅐ와 ㅔ모음을 사용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변별되지 않습니다. 이에 철자법에 신경쓰지 않으면 ㅐ와 ㅔ를 제대로 맞추어 적지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당대의 음과 동떨어진 가공의 무언가를 두고 운서를 작성하였다면 비슷한 오류가 책에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교정작업이 어렵고 필사과정에서 그런 실수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은 고대의 문헌자료는 더욱 그러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운의 반절에 사용된 목록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 볼 중뉴重紐라는 부가적인 현상까지 합하여 엄격하게 구분/구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절운을 중고한어의 기준점으로 보고 다시 이를 상고한어의 재구에 동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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