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도 관심을 - 가야연구 맛보기 (21) : 대가야와 신라의 충돌
5세기 초를 기점으로 경주를 기반으로 한 사로국이 영남권에서 가장 앞서는 지역이 되었음은 이미 다룬 바가 있습니다. 한동안은 고구려의 간섭 아래에 놓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6세기에는 그것도 떨쳐 내었지요. 아마도 소백산맥과 영동지역을 기점으로 고구려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제 쪽인 서쪽 방면은 소백산맥을 너머 영동군, 옥천군, 보은군, 청원군에도 거점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1)
마찬가지로 성주군, 달성군, 청도군, 밀양시, 양산시, 부산시를 점거하여 맞은편의 고령, 창녕, 창원, 김해의 가야권과 마주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2-4) 경남권으로 한정하자면 낙동강 본류를 기준점으로 신라와 가야권이 구별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 창녕지역을 신라 권역으로 봐야 하는지 가야 권역으로 봐야 하는지는 사실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서 나타나는 가야 소국의 이름 비자벌比自火/比自㶱, 비지費智가 창녕의 옛 이름 비자화군比自火郡에 이어지므로 창녕으로 비정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고고학적 양상을 보면 계성면의 계성고분군과 창녕읍의 교동고분군이 창녕을 지배한 집단이 축조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두 고분군이 시간적으로 선후관계에 있었는지 혹은 동시기에 양립한 정치체를 보여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있는 상태입니다.(5,6)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지역성이 드러나는 교동고분군에 비해 계성고분군은 신라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과 근처 취락인 계성리 취락유적에서 전형적인 마한계 유물이 출토되어 호남 지역에서의 이주민이 정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전반으로 비정되는데 포상팔국의 난에서 나오는 보라국을 나주로 비정한 일연의 의견에 동조한다면 마한지역과 가야지역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계체 8년 - 514년) 대가야가 자탄子呑과 대사帶沙에 성을 쌓아 만해滿奚와 이어서 봉수와 군량창고을 설치하여 일본에 대비했다. 또 이열비爾列比와 마수비麻須比에 성을 쌓아 마차해麻且奚와 추봉推封에 걸치게 했다. 병사와 병기를 모아 신라를 핍박하여 백성을 약탈하고 촌읍을 노략질하였으니 흉악한 세력이 가해진 곳은 남겨진 것이 거의 없었다. 포학하고 사치하였으며 괴롭혀 해를 끼치고 침략하여 죽인 것이 매우 많았으므로 이루 다 실을 수 없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6세기 초 대가야와 신라의 충돌을 보여주는 기사가 일본서기에 나오는데 하동으로 비정되는 대사를 제외하곤 명확히 비정되는 지명이 없습니다. 추봉의 경우 밀양 혹은 달성군 현풍면으로 비정하는데, 지리적으로 대가야 권역과 현풍이 맞닿아 있고, 밀양은 별다른 고고 유적이 발굴된 바 없어 신라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 곳으로 생각되어 밀양보다는 현풍이 더 알맞은 곳으로 생각됩니다.(3,7,8)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범하는 데 왜 낙동강을 너머 신라를 공격하는지에 대해서는 신라가 백제의 전략에 동의해 백제의 편의를 봐주고 있어 대가야가 먼저 후방인 신라를 공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9)
1. 장창은 (2016), "'나.제동맹기'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 변천", '한국학논총' 45, 91-128.
2. 김세기 (2014), "고분자료로 본 삼국시대 성주지역의 정치적 성격". '신라문화' 43, 1-27.
3. 이동주 (2008), "밀양지역 고대 치소성에 대한 검토 : 추화산성과 가산리산성을 중심으로", '석당논총' 41, 125-177.
4. 이일갑 (2014), "양산 신기리산성에 대한 소고". '문물연구' 26, 27-64.
5. 남재우 (2012), "기록으로 본 고대 창녕지역의 정치적 위상", '석당논총' 53, 243-278.
6. 이성주 (2012), "고대 창녕지역집단의 고고학적 논의", '군사연구' 133, 9-47.
7. 정인태 (2011), "가야지역 고분과 고대 산성의 관계 검토 : 경남·고령지역 대형 봉토분과 석축산성을 중심으로 ", '고문화' 78, 149-177.
8. 전덕재 (2008), "삼국시대 낙동강 수로를 둘러싼 신라와 가야세력의 동향 : 낙동강 중류지역을 중심으로", '대구사학' 93, 29-81.
9. 노중국 (2012), "6세기 전반 대가야의 왕위 교체와 정책의 변화 : 이뇌왕에서 가실왕으로의 왕위교체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66, 253-285.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