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못했나?

 Rice, Psychology, and Innovation


Joseph Henrich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움직임이 영국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방직, 운송, 제련/제강과 관련된 혁신의 흐름이 부채질 한 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은 곧 북유럽을 집어 삼켰고, 영국의 식민지로 확산되었으며, 결국에는 전 세계를 바꾸었다. 처음으로 인류가 맬서스 트랩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왜 이 혁명이 북유럽에서 최초로 등장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만약 당신이 서기 1000년 즈음의 세계를 둘러보고 있다면, 아마도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나 중동을 산업 혁명이 일어날 곳으로 꼽을 것이다. 이 질문의 답으로 여러 연구자들이 지리적인 요인, 교육, 종교, 심지어 유전적인 차이를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Tahelm et al. 논문에서는 분해적인 사고와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혁신에 대한 심리학적 태도의 차이를 유발하고, 나아가 이런 심리학적인 차이가 문화적으로 대물림되는 제도의 차이와 연결되며, 궁극적으로는 벼 농사의 구조에 영향을 받은 환경적인 차이에서 기원한다는 주장을 펼쳐 이 분야의 논의에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하겠다.

실험 연구자들이 수십년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비교한 결과 서구의(Western), 잘 교육되고(Educated), 산업화 되었으며(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모두 줄여서 WEIRD) 사회의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 매우 독특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는데, 바로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분석적/분해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분석적'이라는 용어에 대해 번역자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어감을 느끼므로 이를 배제하기 위해 앞으로 나오는 'analytic'은 '분해적'으로 일괄해서 번역함) 높은 수준의 개인주의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별개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들이 속한 친족이나, 부족, 종교 집단 밖의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반대로 대부분의 다른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협동과 보호, 정체성을 기대할 수 있는 끈끈하고 영속적인 친지와 친척들과의 관계에 매몰되어 있다. 이러한 집산주의적인 사회에서 부(富)는 통상 가문이나 가족의 공동 소유물로 인식된다. 혈통에 의한 영속적인 인간관계에 전념하기에 외부자나 이방인, 혹은 추상적인 원리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

심리학적으로, 개인주의 세상에서 자라난 사람은 분해적인 추론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로 집산적인 환경에 오랫 동안 노출된 사람은 전체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분해적인 사고란 어떤 사물을 그 구성요소가 드러나도록 쪼갠 후 각 부분의 특성을 고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성은 카테고리의 규칙에 따라 판단하며 현재의 기준이 일관적(continue)으로 유지된다. 반대로 전체적인 사고란 어떤 물체나 사람이 맥락 상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유사성은 논리적인 규칙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판단하며, 유사성 판단 기준은 순환적/가변적(cyclical)이다.

고도의 개인주의와 분해적인 사고가 혁신, 창의성, 창조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를 다양한 수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북유럽에서 그러한 고도의 개인주의와 분해적인 사고가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을까? 예를 들어 중국은 1천년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선진적인 기술, 제도적으로 복잡한 사회를 가지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잘 교육되어 있었다. 왜 유럽이 중국보다 더 개인주의적이고 분해적인 사회를 지향하게 되었을까?


1. 토끼와 어울리는 것은? (당근 : 전체적인 대답, 개 : 분해적인 대답)
2. 개인주의 성향인 사람들은 친구보다 나의 원을 크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3. 친구가 나를 도와주거나 해를 끼쳤을 때와 모르는 사람이 나를 도와주거나 해를 끼쳤을 때, 얼마나 보상하거나 보복할 것인가.

Talhelm et al. 논문에서는 환경과 기술의 서로 다른 조합이 서로 다른 형태의 사회 구조를 만들어 내는 문화적인 진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가설을 제기하였다. 어떤 기술-환경 조건에서는 강력한 협동 사회 구조만이 살아남고, 번창하며, 확산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의 후보로 향토 방위나 고래 사냥과 같은 여러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으나 Talhelm et al. 논문은 벼 농사와 밀 농사의 노동 환경 차이에 초점을 맞추었다. 높은 협동성을 요구하는 벼 농사가 부계 친족 집단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적 규범을 발전시키고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강력한 씨족/가문의 대두는 특별한 집단 심리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밀 농사는 독립적인 핵가족만으로 가능하므로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조장하게 된다.

이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Talhelm et al. 논문은 표준적인 심리학 도구를 사용하여 밀과 쌀 재배 수준이 서로 다른 중국의 각 성(省) 출신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분해적인 사고와 개인주의의 정도를 측정하였다.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비교하였기 때문에 유럽과 동아시아를 직접적으로 비교했을 때에 배제하기 어려운 종교, 문화, 정부 체제와 같은 혼재 변수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예상 결과는 간단하다. 상대적으로 밀을 많이 키우는 성(省) 출신자가 더 개인주의적이고 분해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성이 나타나야 한다.

벼 농사를 짓는 성(省)의 참가자가 덜 분석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낫다. 그 차이의 폭은 큰데 완전히 벼만 재배하는 성(省)의 평균 분해적인 사고 값에 비해 전혀 벼를 재배하지 않는 성(省)의 그것이 56%나 더 크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벼-밀의 재배 경계선을 따라 전 지역에서 동일한 양상이 나타났으며 다른 요소에 의한 차이일 가능성은 미미했다.

벼 농사 지역의 참가자는 덜 개인주의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가리키는 원을 그들의 친구들의 원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그렸는데, 밀 재배지역은 1.5 mm 더 크게 그리고 있었다.[이 결과는 WEIRD 사람들의 경우와 간접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다. 미국인의 경우 다른 사람에 비해서 스스로를 6 mm 더 크게 그리고, 유럽인의 경우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3.5 mm 더 크게 그린다.] 벼 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였으며 처벌하는 것은 주저했는데, 이는 집단적인 환경의 사람들이 내부인에 대해 편파적으로 편애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자, 재배하는 작물의 형태가 심리학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패턴이 혁신에 대한 차이를 정말로 설명해 줄 수 있는가? Talhelm et al. 논문에서 이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하였는데, 예를 들어 벼에 대한 의존도와 새로운 발명에 대한 특허권 수가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증거가 결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제안한 가설을 넓은 의미에서 지지하는 결과이며 앞으로의 추가 연구가 매우 기대된다. 예를 들어, 이러한 논의는 북부의 침입과 기후 변화로 남쪽 벼 농사 지역으로 몰려간 사람들 덕분에 가문 중심 사회가 생태학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유력 가문의 권력을 강화시켜주는 국가적인 정책과 법적인 제도 때문에 11세기에 중국의 산업혁명의 맹아가 말라죽고 마는 양상의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진화는 생태, 사회적 학습, 제도, 심리 사이의 풍부한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특정한 형태의 가족 형태나 사회 구조가 선호될 수 있다. 몇 세대에 걸쳐 강화된 특정 제도는 아이들의 심리와 뇌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에 장기간 노출되는 것은 비가역적인 변화를 유발하여 이윽고 사회전반적으로 고정된 심리와 제도는 혁신, 새로운 제도의 형성, 새로운 땅으로의 성공적인 이주 가능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밀 농사가 WEIRD의 심리와 산업 혁명의 기원을 해명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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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계적인 학술지 Science에 게재된 논문 'Large-scale psychological differences within China explained by rice versus wheat agriculture'에 대해서 소개하는 Perspective 논문 번역입니다. 자세한 데이터와 실험방법은 원 논문을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리콴유의 아시아식 민주주의 드립이 생각나게 하는 연구결과네요.

현대사/정치 게시물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이쪽 게시판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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