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고고학 증거로 본 공자시대 중국사회

 대선배님(?)의 세컨(?)으로 의심되는 분이 왔다 간 것 같은데 그 분 덕분에 사게 된 책이 다 마음에 드네요. ㅎㅎ


그 중 하나인 -"고고학 증거로 본 공자시대 중국사회", 로타 폰 팔켄하우젠 저, 심재훈 역, 세창출판사-의 서론 일부를 좀 올려봅니다. 대선배(?)님께서 보실 수는 없다는 게 좀 안타깝지만...


모든 고고학 일반과 마찬가지로 중국 고고학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모두에 걸친 분야이다. 이 책은 사회과학적 측면을 강조하여 후기 청동기시대 중국의 사회 구조와 사회적 상호작용, 사회적 변화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을 재검토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 출토자료들은 어떤 종류의 지식을 전해줄 수 있을까? 만약 고고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정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훨씬 양질의 정보들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새로운 고고학 자료와 고대 중국의 풍부하고 존중받는 문헌 전통 사이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명백한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는 한층 나은 신선한 정보들이 확실히 요망된다.

예를 들어, 공자 생시(기원전 551?~479?) 중국 사회 제도적 기초의 기원과 관련된 전래문헌 기록과 새로운 고고학 증거들 사이의 두드러진 모순에 대해 살펴보자. 공자와 그 제자들은 자신들 시대 정치, 종교적 체계의 저변에 있는 원리들이 당시까지 지속되던 주周 왕조(기원전 1046-256년경) 초창기에 고안된 것으로 믿었다. 그들은 왕조의 창시자들인 문왕과 무왕, 주공, 소공을 모든 시대에 모범이 되는 선한 통치와 올바른 행위의 준칙을 세운 문화적 영웅으로 간주했다. 무왕의 아우이자 조언자이며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 공실의 개조인 주공이 그들의 최고 역할모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주周의 예제를 만든 것으로 신뢰되었다. 그러한 예제는 등급화된 계급제도 내에서 모든 사회성원들에게 자신들의 적절한 지위를 부여해주었고, 그 사회 자체의 지속적 정당성을 보장하는 종교의식이 수행될 때 각자의 역할을 규정했다. (특히 주공은 전통적으로 유교 경전의 삼례三禮중의 하나인 '주례周禮'의 편찬자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 책에는 주 왕국의 행정 기구(관직)가 열거되어 있다.)

그렇지만 공자의 생시까지 이러한 이상적 질서는 이미 정지 상태에 빠져 있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이를 부활시켜 자신들의 시대에 맞추는 것을 임무로 삼았고, 이러한 목적 때문에 그 질서가 재해석되어야만 했다. 초기 유가들의 위대한 공헌은 일반적으로 얘기되듯 주왕실의 의례제도를 지적으로 사유하여, 이를 원래의 시대적/신분적으로 한정된 참조체계로부터 이탈시켜서, 이로부터 모든 정치와 다가올 시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간적 가치를 도출한 데 있었다. 거기서 공자는 자신의 역할을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규정하면서 주공의 황금시대를 재건하는 토대를 닦는 것을 주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 고고학은 주초周初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대부분 역사적 창작, 즉 후대의 철학적 공상이 희미하고 선택적으로 기억된 과거에 투영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제1장과 2장에서 살펴보듯, 그 연대가 서주(기원전 1046-771년경)에서 공자 당대까지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발견들은 공자의 지적 혁신에 청사진이 된 의례제도가 실제로 상당히 늦은 시점에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주는 사실상 최초 2세기동안 앞선 상商 왕조(기원전 1600?-1046년경)의 전통을 본질적으로 지속했다. 주가 자신들의 독특한 의례와 함께 새로운 정치질서를 고안한 시점은 서주 초(기원전 11세기 후반)가 아닌 서주 후기, 즉 기원전 850년경이었다.

이러한 "서주 후기 의례개혁"은 주 왕실 세력이 쇠락한 시기에 의례의 재편을 통해 사회질서를 안정시키려는 최소한 두 차례의 계획적인 시도 중의 첫 번째였다. 이 책에서 "춘추 중기 의례재편"으로 명명한 두 번째 시도는 공자의 생존 시기보다 약 반 세기 전에 일어났다. 지난 80여 년간 고고학자들의 맹렬한 노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두 변혁 중 어떤 것도 오늘날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존하는 어떤 문헌에도 이들에 대한 명료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나 고고학 증거들은 이들 변혁이 일어났음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뒤에서 살펴보듯 출토자료들은 공자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먼 과거로 돌아가려 하거나 자신들의 시대에 급격한 혁신을 꾀한 것이 아니라, 당시 거의 한 세기 동안 지속되면서 그 시대 의례에 광범위하게 명시된 폭넓은 변화의 동향에 대해 성찰하며 철학적 표현을 부여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당연시되고 있는 초기 사상가들의 지적 혁신뿐만 아니라, 특히 그 독창성의 성격에 대해서까지 근본적인 재평가를 요한다.

<후략>

한줄요약 : 중국 고대 문헌들이 이야기하는 사건의 연대는 실제로는 그닥 믿을만 하지 않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가야에도 관심을 - 가야연구 맛보기 (12) : 대가야의 성장

동국정운 서문을 다시 들여다보며...

고대 해수면 변화 3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