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 인도-유럽어 확산에 대한 최신 분자유전학 연구 (하-2) (完)
원 논문은 정말 분자유전학 논문이지만 supporting information에서 다룬 고고학적인 내용만 번역해서 올립니다. 분자유전학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실까봐 부연설명 합니다.
ME Allentoft et al. (2015) - Population genomics of bronze age Eurasia, Nature.
1.5 Abashevo/Sintashta (2100-1800 BC), Andronovo (1700- 1500 BC), Karasuk (1400-900 BC), and Mezhovskaya Culture (1300-800/700 BC).
Sintashta 문화는 우랄 너머에 존재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청동기 문화로 완전히 발달된 전차를 사용했다. 기원전 2100 년에서 2000 년 경으로 보이는 이 지역의 정착지는 매우 정비된 요새 구조로 감싸여 있으며 정형화 된 집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새로운 정착지는 구리 광산에 가까이에 위치해 있고, 채광과 제련이 중요한 산업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유목 경제 체제였다. 전사와 전차수의 시신은 종종 봉분 아래의 수혈 갱도에 두 마리 말과 바퀴 두개를 가진 전차와 함께 매장되었다. 우랄산맥 서쪽의 동유럽 초원-숲 경계 지역까지 뻗어나간 유사 문화인 Abashevo 문화 역시 전차를 잘 사용했다. (논문 본문에서) 기원전 2100 년에서 기원전 1800년 사이 초기 전차 사용을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을 검은 점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각각의 점은 비슷한 형태의 고삐를 가진 전차가 무덤에 부장되어 있는 유적지를 나타낸 것이다. 엘리트 전사들이 중부 유럽의 동쪽 지역에서 우랄 산맥 남쪽-서쪽 지역으로 진출했을 것이며, 미케네와 아나톨리아 히타이트 방면으로도 나아갔을 것이다. 전차를 만드는 장인 계층, 말을 사육하고 육종하는 계층,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그 사용법을 가르치는 계층이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기술 집단의 구조는 복잡하기 때문에 이 기술을 온전히 이식되기 위해서는 말과, 전사들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의 이동이 필요하다. 이 기술 집단의 이주로 사회 구조가 바뀌게 되며 전쟁과 정치 구조와 관련된 귀족 집단에 대한 관념을 넘어선 경제 구조와 본질적인 사회 형태까지 도입된다. 즉, 전투 귀족들과 그에 관련된 전문가 집단이 유라시아 전체와 근동 사회의 청동기 사회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고고학적으로 Sintashta 문화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는 이 사람들이 잘 규격화된 식민 정착지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기원이 흑해 주변에서 코카서스, 혹은 북부 이란에서 기원했다는 여러 가설들이 존재한다. 기원전 1800 년에서 1700년 이후에 후기 Sintashta인들은 동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재지 원주민에 섞여 들어가면서 Andronovo 문화를 형성했다. 이 문화 역시 전차를 사용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남쪽과 동쪽으로 이주하여 북부 이란과 북부 인도/파키스탄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지배집단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 기원전 1500 년에서 1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Rig Veda 문헌에서 이 전사 집단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Sintashta 문화와 Andronovo 문화의 매장 양식은 매우 유사하며 리그 베다에서 묘사된 그들의 모습은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의 Nordic Bronze Age의 그것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Karasuk 문화는 Andronovo 문화와 Okunevo 문화와 연속성을 가진 계승 문화이다. 이 문화의 영향력은 알타이-사얀 산에서부터 아랄해, 중국, 서부 시배리아까지 나타나고 있다.
Mezhovskaya 문화는 청동기 시대 말기 서부 시베리아와 우랄 산맥의 삼림, 삼림-초원 지대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시기 가장 큰 사회, 문화 집단 중 하나이다. 이 문화는 Karasuk 문화 이외에도 초원과 동부 삼림 지대의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몇몇 연구자는 이 문화가 이후 Ugria인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1.6 European Bronze Age Cultures: Bell Beaker (2600-2000 BC)/Unetice/Nordic LN (2300-1800 BC), Vatya (2000-1500 BC), Maros (2300-1500 BC) and Tumulus/Nordic Cultures (1700-1200 BC).
북부와 서부 유럽의 청동기 시대는 Bell Beaker 문화(기원전 2600 년에서 기원전 2000 년 사이)와 Unetice 문화(기원전 2300 년에서 기원전 1800 년 사이)의 확장으로 시작된다. 통상적으로 Bell Beaker 문화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작되어 서부 지중해와 대서양 해안가를 따라 확장되었고 이후 내륙 지방으로 확산되었다.(단 헝가리보다 동쪽 지역으로는 확장되지 못했다.) 이는 2000구의 Bell Beaker인에 대한 치열 형태 연구에 근거하고 있다. 이 장인 집단의 이동은 그들의 뛰어난 기술 덕분에 여러 곳에서 초빙되어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집단 자체의 인구압 때문에 그들 스스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섰기 때문일 수도 있다. Corded Ware/Single Grave 문화와 확장되어 온 Bell Beaker 문화의 융합으로 만들어진 Beaker 문화가 영국 제도와 중부 유럽에서 등장했다. 이 새로운 문화는 300년 전에 Corded Ware/Single Grave 문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재빨리 확장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유럽 사회에 또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한편, 광산업과 제련 기술을 가지고 금속에 기반한 새로운 상품 경제 체제를 도입한 중부 유럽과 북유럽의 Unetice 문화는 매우 높은 수준의 이동성을 보여 주었다.
기원전 1800/1700 년 이후 유럽 사회는 구리와 주석 교역에 기반한 상품 경제 체제로 통합되어갔다. 유럽의 인구는 거의 근동 수준까지 증가했다. 이 시기 사회 형태는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는데, 남독일에서 남스칸디나비아에 걸쳐 존재한 소 외양간을 가진 독립적인 농장에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가 떨어져서 산 것으로 보이는 Tumulus 문화와 동부-중부 유럽에서 더 많은 인구가 요새형 정착지에 모여산 Tell 문화가 그것이다. 여기서 Tell이란 이름은 이 정착지가 수백년간 유지되어서 그 유적지가 언덕을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Danube 강을 따라 형성된 중부 헝가리의 정착지는 Nagyrev 문화(기원전 2300 년에서 기원전 2000 년)를 탄생시켰고, 이후 Vatya 문화(기원전 2000 년에서 기원전 1500 년)으로 이어졌고, 헝가리-루마니아-세르비아 경계 지역에는 Maros/Mures 문화(기원전 2300 년에서 기원전 1500 년)이 등장했다. 이 시기 이후로는 이주민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상인들과 전사들의 이동은 증가하여 이전보다 훨씬 더 먼 지역까지 활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전략적인 제휴에 의한 교역망은 자루가 8각형인 검이나 자루에 테두리가 달린 검이 매우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을 통해 고고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이동은 Neckarsulm의 주로 전사들이 묻힌 무덤의 스트론튬 동위원소 분석으로도 확인되었다. 이 중 1/3이 이 지역 출신이 아니며 아마도 외국의 지도자에게 복무하기 위해 이동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정치적 동맹관계로 묶인 각 집단 사이에 이러한 조직적인 이동이 일상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기원전 3천년 대에 만들어진 이 교역망은 이동 수단의 발달과, 청동기의 완전한 도입, 더 복잡한 정치-경제의 발달을 통해 기원전 2천년 대에 더 강화되고 확장된다. Frachetti(2012)에 따르면 "기원전 2천년 대에 막 시작된 이러한 지역간 상호 관계망은 새로운 기술의 전파와, 발전된 가축 사육과 경제적 혁명, 그리고 상품과 원자재 교역의 증가를 강화시켰다. 상호 관계망의 성장은 각 지역 집단이 외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적으로 기민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상호작용이 언어의 변화와 같은 문화적 충격이나 지역 인구압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는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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