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 인도-유럽어 확산에 대한 최신 분자유전학 연구 (중)

 W Haak et al. (2015) - Massive migration from the steppe was a source for Indo-European languages in Europe, Nature



언어 확산에 대해 추론시 유전학 데이타 사용의 위험성

인도-유럽어의 기원과 확산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지금껏 논란거리였는데 이는 원 인도 유럽어의 고향이라는 개념이 이데올로기적 목적에 의해 오용되어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Gustav Kossinna는 'settlement archaeology (정착지 고고학)'이라는 것을 제안했는데,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물질 문화-특히 Corded Ware 문화는 동질적인 언어-여기서는 원 인도-유럽어를 공유하는 유전적으로 잘 정의된 민족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데이타는 Corded Ware 문화가 중부 유럽의 재지 주민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부터 이주한 이주민의 유산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Kossinna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V. Gordon Childe는 후에 Otto Schrader에 의해 언어학적으로 비판받긴 했지만 초원에서 유럽으로의 이주가 있었다는 가설을 제안함으로써 우리의 연구 결과와 거의 근접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 후, 특히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고고학자들은 고고학을 잘못 사용했던 전례를 일소하기 위해 이주민에 의한 재지 주민의 소멸이나 정착지 고고학과 같은 개념을 모조리 폐기하였다. 이에 실제로 고고학과 언어학, 그리고 유전적인 집단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거의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고고학 학계의 기류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물질 문화의 유사성과 상이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들이 제안한 이주 모델에 의해 끊임없이 도전받았고, 그 덕분에 30년 전에 비해서 인류의 이주가 고고학자 사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농경 문화의 확장과 연관지어서 인구의 성장에 대해서는 잘 다루어지고 있지만, 옛부터 다루어진 식량 생산 인구 사이에서 진화하는 새로운 사회-정치적 구조와 이에 따른 이주민의 발생은 이해의 폭이 좁고 잘 다루어지지도 않으며 대개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유전학 데이타는 실제로 이주가 일어났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것으로 이러한 유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는 이주민이 직접 옮긴 유물중에서 그 이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지역 특이적인 동위원소 같은 것을 분석하지 않는한 고인골 DNA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Childe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고인골의 형태에 기초해서 초원으로부터의 이주 가설이 이미 제안되어 있지만, 최근에도 Corded Ware와 초원 Kurgan 집단 사이를 다룰 때, 이 논란에 대한 터부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연구결과에서 결론내리길 "중부 유럽-독일 중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의 Corded Ware 문화는 '구 유럽'의 기층을 형성하는 매우 균질적인 집단으로, 적어도 Unetice 문화까지 유지되었다. 이 집단은 우크라이나의 Kurgan 사람들과 아무런 친연성이 없으며, Kurgan인이 실제로 이 지역에 존재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라고 하였다. 비슷한 맥락으로 고고학에 기반한 초원 가설의 중요 논리에 대해서 "Yamnaya 침략자들이 북 유럽 평원을 통해 확장하여 Corded Ware 문화의 지평선을 열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설명은 이주라는 개념이 얼마나 논란거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원전 2900-2700년 경 흑해 초원에서 동일한 환경인 유럽의 초원지대로의 이주는 이 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고 언급한 최근의 고고학적 통합 인식은 초원의 이주가 사회적, 기술적, 경제적인 신석기 말기 물질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봄으로써 이러한 경향성을 거스르는 예외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Corded Ware 문화가 초원의 침입자의 것이었다고 하는 과거의 모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기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Corded Ware 문화 형성에 초원 이주민이 관여했다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표 유물과 함께 묻힌 유골에서 방사성 동위원소로 연대를 특정하고, DNA 염기서열 분석을 함으로써, 잘 정의된 고고학 문화의 전파가 이주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즉, 고인골 DNA를 사용해서 특정 물질 문화의 전파가 민족의 이주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움직인 것인지, 단지 문화만이 확산된 것인지 확인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의 논문은 바로 그러한 이주가 있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초원의 민족과 Corded Ware인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며, 과거에 있었던 이 문화의 관련성에 대한 논란에 의미있는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기원과 관련하여 고인골 DNA 자료를 사용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점은 문자의 발명 이전이기 때문에 고고학 문화를 영유한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이주가 있었거나 유전자의 교환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고, 이 이동과 함께 언어가 전파될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언어 확산이 어느 시기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도 확정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위에서 적은 것처럼 유전학 데이타는 경쟁적인 가설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은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의 연구는 유전학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고고학적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흥미로울 수 있다. 특히, 우리의 연구는 유럽에서의 인구 이동과 명멸에 대한 두 번의 커다란 에피소드에 대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인구의 역사에 이주가 제한적인 영향만 미친다는 기존의 생각에 도전하고 있다. 이 중요한 이주들이 유전체에 기록되어 있는 것 뿐만아니라 이주가 끝난 후에 원래 재지 주민의 유전체 지분이 다시 상승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우리는 인구 이동이 일어난 이후의 오랜 역사동안 이주민과 재지 주민간의 기나긴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논란거리를 돕는데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앞으로 유전학을 통한 영감이 인도-유럽어 기원을 밝힐 것에 대한 기대

궁극적인 질문인 원 인도-유럽어의 고향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데이타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유전학으로 인도-유럽어의 기원을 찾아나갈 앞으로의 연구 방향은 인도나 이란, 중국 북서쪽에서 고인골 DNA를 얻어서 멀리 떨어진 동쪽 지역에 인도-유럽어 확장에 대한 동일한 가설을 검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유골이 보존되기 어려운 환경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북유럽으로 이동한 초원 출신 선조들이 마찬가지로 이란이나 인도에도 인도-유럽어를 전파한 사람이라면, 다른 기작으로 언어가 전파된 것이 아닌 이상 이란 고원이나 남아시아의 선사시대 샘플에서 초원 요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연구 방향으로는 유럽인의 기원과 관련된 또다른 선조들에 관한 것이다. 현재의 남유럽인들은 북유럽에 비해 Yamnaya와 관련된 요소를 적게 가지고 있다. 이는 Yamnaya 출신 이주민들이 남유럽에 미친 영향이 북유럽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희석되어 버렸든지, 아예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시기적으로 늦은 시기의 혼혈의 결과 북유럽의 Yamnaya 요소가 간접적으로 도입된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우리가 확인한 신석기 말기 초원으로부터의 이주는 인도-유럽어 확산의 일부분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머지 유럽의 인도-유럽어족은 초원이 아니라 "신석기 아나톨리아인"이나 후의 "아르메니아 고원"에서 기원했을 수도 있다.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는 이러한 열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앞으로의 연구에 대해 특별히 약속된 장소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도-유럽어의 기원에 대한 서로 다른 네 개의 이론은 히타이트어와 미케네 그리스어를 사용한 아나톨리아와 남동부 유럽의 사람들이 어떠한 역사적인 길을 걸어왔을지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지역으로부터 고인골 DNA를 얻어서 조사한다면 새로운 인구 집단의 이주와 이 언어의 등장 사이에 어떠한 유전적 불연속성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고인골 DNA는 고고학과 언어학과 별도의 근거를 제공하므로, 인도-유럽어의 기원에 대한 세기에 걸친 수수께끼를 해명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가야에도 관심을 - 가야연구 맛보기 (12) : 대가야의 성장

동국정운 서문을 다시 들여다보며...

고대 해수면 변화 3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