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 인도-유럽어 확산에 대한 최신 분자유전학 연구 (상)

 W Haak et al. (2015) - Massive migration from the steppe was a source for Indo-European languages in Europe, Nature


Supplementary information 11

인도-유럽어의 확산 문제에 고인골 DNA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


인도-유럽어 확산에 대한 주요 가설

인도 유럽어는 대서양에서 인도 아대륙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하는 언어군이다. (물론 역사상 최근의 이주에 따라 그외의 지역에도 훨씬 퍼져 나갔지만) 인도-유럽어는 현존하는 영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이란어, 힌두어 및 기타 등등과 덧붙여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어나 프리기아어, 중국의 신장 지역에 있었던 토하라어, 유라시아 대륙의 스키타이어와 같은 멸종한 언어를 포함하는 집단이다. 문자의 발명과 통신, 이동 수단의 개선 덕분에 이제는 새로운 언어가 문화 전파만으로 확산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언어의 전파를 위해서는 전적으로 직접적인 접촉과 일정 수준 이상의 이주자를 필요로 하였으며, 그러므로 고인골 DNA 연구는 인구 이동을 추적함으로써 이러한 언어 확산에 대한 모델을 평가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비교 언어학이 초기 언어의 구성 형태를 밝혀내는 것처럼 고인골 DNA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초기 인구의 구성 형태를 밝혀낼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원 인도-유럽어(현존하는 그리고 역사적인 인도 유럽어들을 통해 재구된 고대 언어)가 지리적으로 제한된 유라시아의 어느 좁은 지역에서 사용된 언어라는데 동의한다. 18세기에 인도 유럽어족이라는 존재가 드러났을 때부터 많은 이론들이 이 언어의 고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이론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 이동을 가정하고 있다. 이 가설들은 고인골들에 대한 유전학적 방법을 통해 검증될 수 있다.

인도-유럽어 확산에는 두 가지 우세한 이론이 있다.

1. 초원 가설 : 인도-유럽어는 흑해-카스피해 연안의 현재 남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곳에 뭍인 쿠르간인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2. 아나톨리아 가설 : 신석기 초기에 아나톨리아로부터 유럽으로 이주한 초기 농부들이 인도-유럽어를 가져왔을 것이다.

이 가설에 대한 추가적인 변종 가설

3. 발칸반도 가설 : 아나톨리아 가설과 연결되지만 인도-유럽어의 전파가 그 보다 늦은 남동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
4. 아르메니아 고원 가설 : 초원 가설과 연결되지만 그 고향을 남부 코카서스로 보는 가설

아나톨리아 가설을 지지하는 주 논리는 약 8000년 전에서 7000년 전 사이에 이주한 초기 농부들이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구상의 대격변은 광범위한 지역에 새로운 언어가 도입되게 된 것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설명이다. 다른 방식의 언어 전파 역시 가능한데,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우세한 소수가 그들의 언어를 다수의 하층민에게 전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 헝가리어) 아나톨리아 가설의 또 다른 논리는 인도-유럽어족의 계통도를 그렸을 때 히타이트어와 같은 아나톨리아어가 원 인도-유럽어와 가까운 기저 부분에 위치하고 있어,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발칸을 통과하여 유럽으로 언어가 전파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생물학으로부터 도입한 계통분석 기법을 통하여 언어의 분화 시기를 추론해 보았을 때 원 인도-유럽어가 딸(daughter) 언어로 분화한 것이 매우 이른 시기로 보인다는 것이다.

초원 가설은 원 인도-유럽어의 분화가 그보다 수천년 이후인 기원전 4000년 전에서 3000년 전 사이에 일어났다고 보는 것으로 최근 이를 지지하는 계통 분석 결과도 있었다. 초원 가설을 지지하는 입장의 주 논리는 원 인도-유럽어를 재구했을 때 수레/전차와 관련된 어휘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언어학자들이 자손 언어에 기초해서 고대인들이 어떠한 물질 문화를 영유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의미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이러한 재구가 사실이라면 원 인도-유럽어는 초기 농부에 의해서 전파된 것일 수 없는데 이는 바퀴와 수레/전차의 발명이 농경의 전파보다 수천년 이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최초의 바퀴가 초원에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수레의 이용과 수레를 위한 말의 가축화는 초원의 유목 집단의 확산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원 가설의 또 다른 장점은 우크라이나 초원의 위치가 북쪽에는 우랄어족이 있고 남쪽으로는 남카프카스어족이 있어 이 언어들과 원 인도-유럽어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차용어를 설명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 논문이 제시하는 유전학 데이타에 기반한 인도 유럽어 기원에 대한 가설

유전학 데이타는 인도-유럽어 확산에 대한 대립 가설들을 평가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이 가설에서 광범위한 인구 이동을 가정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가설들은 고고학적으로 그리고 유전학적인 검토 대상이다.

고인골 DNA에 대한 미토콘드리아 DNA와 게놈 분석 데이타는 아나톨리아 가설에 대한 주된 가정을 검증해 주었다. 우리의 연구 결과 역시 지난 연구결과와 일치하며 연구 결과를 확장시켜 최초의 농부들이 중부 유럽(독일과 헝가리)과 스칸디나비아뿐만 아니라 이베리아반도까지 공통 조상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인골 DNA는 아나톨리아 가설에서 예상한 것과 일치하였으며, Bellwood가 그린 초기 농경의 전파 시나리오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발칸 가설 역시 틀리지 않았는데,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남동부 유럽에서 분지된 한 가지는 다뉴브 루트를 따라 중부 유럽으로 들어가고 또 다른 가지는 지중해 루트를 따라 이베리아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동을 조상으로 둔 초기 유럽 농부들이 상대적으로 균질한 인구 집단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유럽 전체가 하나의 언어 집단에 속하게 된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의 새로운 유전학 데이타는 신석기 말기에 일어난 초원에서 유럽으로 이루어진 두번째 이주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우리는 이 이주민이 독일의 Corded Ware인의 적어도 4분의 3의 선조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 수치는 독일의 다른 후기 신석기/청동기인과 현재의 북부 유럽인의 그것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즉, 아나톨리아 가설의 주 논리(즉, 대규모 언어 변화는 대규모 이주민을 필요로한다.)는 초원 가설에도 통용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우리는 그 당시 이주민이 말하던 언어를 알기 위해서 그 시간대로 가 볼 수는 없지만, Corded Ware인이 말하던 언어가 선조 중 소수를 차지하는 원주민의 언어를 계승했을 가능성보다는 Yamnaya 문화를 영유하던 다수의 이주민의 언어를 계승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즉, 우리의 결과는 Corded Ware인과 그들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통을 잇는 중부 유럽인들이 초원에서 유래한 인도-유럽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지지하는 것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결과는 인도-유럽어의 기원에 관한 두 주요한 가설 사이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이는 초기 신석기 시대와 후기 신석기 시대의 대규모 인구 이동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결과가 원 인도-유럽어의 본적지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가설 중에서 어떤 가설은 그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고 어떤 가설은 그 가능성이 감소할 것인지 평가하자면,

1. 후기 신석기 시대에 초원에서 중부 유럽으로의 이주를 확인한 우리 결과로 초원 가설은 신빙성이 증가하였다. 이 이주는 초원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몇몇이 이미 예상한 것으로 우리는 이 일이 실제 일어난 일임을 증명하였다. 우리는 초원 가설 내부의 추가적인 변형 논리에 대해서도 몇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앞으로 샘플 수가 늘어나거나 중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샘플링을 할 경우 달라지게 될 수도 있지만 일단 우리는 Corded Ware 문화 이전에 어떤 초원 이주민이 있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4000년 이후에 인도-유럽어 분화가 시작되었다는 가설은 확실하게 기각할 수 있었는데, 4500년 전 이전에 이미 유럽으로의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이주는 대규모 인구 변화를 불러 일으켰으며, 초원 가설은 더 이상 인도-유럽어의 전파가 지배층의 언어가 하층민으로 전파된 것이라는 설명에 더 이상 얽매일 이유가 없다. 대신에, 우리의 결과는 인도-유럽어의 도입이 단순히 수적 우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 이주는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는다.

2. 아나톨리아 가설은 유럽의 모든 인도-유럽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의 지위는 더 이상 누리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유럽의 선사시대에 농경민의 이동이 유일한 인구 이동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초원 이주민의 언어 효과를 고려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나톨리아 가설이 우리 데이타에 의해 전적으로 부정된 것은 아니며, 여전히 인도-유럽어의 주요 가지가 아나톨리아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 특히 중앙과 북부 유럽에 비해 초원 요소가 적은 남부 유럽의 가지에 대해서 그렇다.

3. 발칸반도 가설 역시 아나톨리아 가설과 비슷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만약 남동부 유럽이 초기 농부가 중부와 서부 유럽의 자손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다면, 발칸에서 나머지 유럽 지역으로 인도 유럽어 사용자의 확산이 현재 유럽 곳곳에 또 다른 층의 "초기 신석기" 유전자가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초원으로부터의 이주와 그 이주민의 언어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초원의 이주민이 인도-유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인도-유럽어를 배우게 된 것이 그 이전에 유럽에서 초원으로 이동한 사람들일 수 없는 것이, Yamnaya 샘플에서는 유럽의 초/중기 신석기 농부들의 유전적 요소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 아르메니아 고원 가설은 신빙성이 증가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Yamnaya 초원 유목 선조와 고대의 아르메니아 주민과 유사할 현재 아르메니아 샘플 사이에 일정 수준의 섞임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때의 동유럽 수렵-채집인들과, 남쪽의 아르메니아 선조들이 과연 어떤 언어를 말하고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코카서스와 근동의 고인골 DNA 조사를 통해 이 지역과 초원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앞으로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결과는 초원으로부터 이동한 일련이 사람들이 남부 지역 사람들에게 녹아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현재 코카서스 사람들의 다수가 고대 북 유라시아와 연관된 고대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밝혔다. 즉, 코카서스 지역을 관통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혹은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인구 이동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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