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feel 받아서 끄적거리는 훈민정음 당대 자음 음가에 대하여
한글은 우리 역사의 빛나는 자랑인 세종대왕어제 훈민정음을 기본으로 하여 20세기 초 다소의 수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문자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접하고 익혀 다들 언제부터 한글을 익히게 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교육열하나면 서러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하는 것 중의 하나로도 꼽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알고 있는 한글에 기반해서 문자생활을 하거나, 거꾸로 훈민정음을 이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터넷시대 많은 사람들이 오타 아닌 오타, 우스꽝스러운 철자법(혹은 맞춤법)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한글의 자모와 한국어의 음가 사이에 일정 이상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특히 많이 언급 되는 것이 ㅐ와 ㅔ의 혼동일텐데요. 현대 한국어는 ㅐ와 ㅔ가 더 이상 변별되지 않음을 단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영어교육 덕분에 다시 변별력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되다'와 '돼', '-대다'를 혼동하는 것도 'ㅚ' 모음이 자음 뒤에서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말의 변천이 본격적으로 글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죠. 이는 반대로 글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은 입말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글이 훈민정음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거꾸로 세종대왕 시절과 현재 한국어의 자모 음가에 일정부분 차이가 발생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죠. 따라서 현재의 음가대로 중세국어를 파악하는 것은 편한 이해방식입니다만 어찌보면 '속'편한 방식일 수도 있죠. 이에 지식보따리상 흉내를 내어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 좌판만 좀 깔아 놓아 보겠으니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면 하나 골라 가시면 어떨까 합니다.
훈민정음은 자음을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으로 나누고 있으므로 이에 맞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아음
아음은 풀자면 어금닛소리인데 현재 한국어는 연개구음 음가를 가지는 ㄱ, ㄲ, ㅋ, ㅇ(종성에서)이 그것입니다. 훈민정음에서는 ㄱ, ㅋ, ㄲ, ㆁ(옛이응)이 해당하는데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으로 배당되어 있으며 원 중국어의 연구개 무기 무성음, 유기 무성음, 유성음, 유성 비음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참고로 중국어 전탁음과 우리의 된소리 발음은 실상은 다른 물건입니다만 옛 사람들은 같다고 파악했습니다. 이는 후대 개화기 시절의 외래어 중 유성음 계열이 어두에서 된소리로 실현되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gum > 껌, dam > 땜, jam > 쨈, bus > 뻐스 등등)
이 아음부터가 꽤나 큰 떡밥이 걸려있는데 분명히 기본 자형은 그 음에서 가장 여린 음을 사용한다고 해 놓고, (설음에서 ㄴ이라든가, 순음에서 ㅁ이라든가) 연구개에서 가장 여린 음인 ㆁ은 후음의 ㅇ에서 따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중국 음운의 36자모의 의(疑)모와 유(喩)모가 중국에서도 혼동되고 있고, 한국한자음에서도 구별되지 않는 것, [ŋ]음가 자체가 어두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함이 통상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당대의 음가가 현재의 연구개성 음가보다 더 혀가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목젖음이나 인두음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즉, 중국어의 아음과 후음과는 달리 한국어의 당대 자음은 ㄱ 계열과 ㅎ 계열이 상당히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ㆁ음이 원래대로라면 ㄱ과 같은 자형에 배당되어야 하지만 ㅇ과 같은 자형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이는 15세기 한국어에서 ㄱ음이 탈락하여 ㅇ이 되는 현상, 고대 한국어에서 ㄱ과 ㅎ 계열 한자음이 변별되지 않는 현상과 맥락상 이어지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이는 길공구님의 만주어 전사 자료에서 만주어의 구개수음이 ㄱ음으로 전사되는 형태와도 연결될 수 있겠죠.
2. 설음
설음은 혓소리로, 조음 위치는 윗니의 뿌리부분입니다. 현재 한국어는 ㄷ, ㅌ, ㄸ, ㄴ이고 훈민정음에서도 차이는 없습니다. 설음은 따로 드릴 말씀이 없네요.
3. 순음
입술소리로, ㅂ, ㅍ, ㅃ, ㅁ이 해당됩니다. 이 자체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만 순음에는 훈민정음의 대형 떡밥 순경음 ㅸ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다른 순경음 ㆄ, ㅹ, ㅱ은 전적으로 외국어를 전사하는데([fʰ], [v], [ɱ]) 사용한 것과 달리 순경음 ㅸ은 한국어 자료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근데 과연 이 발음의 음가가 무엇이었느냐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ㅸ의 음가를 유성양순마찰음 [β]로 보지만(단, 외국어 자료에서는 [f])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는 계림유사나 향약구급방, 조선관역어와 같은 자료에서 순경음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부터, [β]은 그 전시기에 [b] 음을 가정해야 하는데 한국어에서 유성음을 인정할 수 있느냐, 사용시기가 매우 짧은데 급격한 음소 소멸이 가능하냐 등등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순경음은 [β]음 보다는 순음퇴화 현상에 의해서 [p]가 [w]가 되는 현상을 표시한 것, 혹은 실제로 [w]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4. 치음
잇소리로 (ㅅ,ㅈ) ㅊ, (ㅆ, ㅉ)가 해당됩니다. 중국어는 치두음와 정치음(권설음)이 있는데 한국어는 권설음이 없어서 다 잇소리였습니다만 현재 ㅅ과 ㅆ은 설음 위치에서, ㅈ, ㅊ, ㅉ는 후치경음으로 조음점이 입 안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당대의 발음과 달라진 것이죠. 이는 현재 종성에서 구별되지 않는 ㅅ과 ㄷ이 당대에는 구별되었으며, ㅈ, ㅉ, ㅊ이 종성에서 ㅅ으로 실현된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또다른 떡밥인 반치음 ㅿ도 문제입니다. 원래 반치음에 해당하는 중국음은 권설비음 [ɳ]이라고 생각되나 점차 변화하여 당대에는 치경구개 마찰음 [ʐ] 상태가 되어 있었는데, 만일 그 음에 한국어의 잇소리를 대응시킨다면 기본 자형은 [s]이 아니라 [z]음에 배당을 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반치음 역시 순경음이 받는 비판을 그대로 받고 있어 지역에 따른 ㅅ음 발음 실현 유무를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반론(즉, ㅿ이라 표기되는 음은 일부 지역에서는 ㅅ이라 발음하고 일부지역에서는 탈락시켜서 발음하는 음)이 있습니다만 순경음에 대한 반론과 마찬가지로 왜 존재하지 않는 음소였다면 굳이 그걸 구별해서 표기법에 반영해야만 했는가라는 의문을 해명해야만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이는 각자병서와 합용병서 떡밥과도 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5. 후음
목구멍소리로 ㆆ, ㅎ, ㆅ, ㅇ이 배정되어 있습니다만 문제는 지금 음가가 남아 있는 것이 ㅎ 밖에 없다는 겁니다.
특히 ㅇ이 음가가 있었던 자음이냐, 아예 무음이냐를 놓고 왈가왈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ㄱ 탈락시 ㅇ이 등장하는 것과, 훈민정음 서문에서도 등장하는 '달아'에서 왜 [다라]라고 적히지 않고 [달아]로 쓴 것처럼 연철하지 않고 굳이 'ㅇ'을 표기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줄이며
아직도 우리는 왜 우리 선조들이(특히 대왕님이) 훈민정음을 이런 식으로 설계했는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후대 사람들이 변용해서 쓰고 있지만 세종대왕께서 탓하지는 않으실 것을 믿으면서...
요약
현대 한국어의 ㄱ 계열음은 연구개음이지만 과거에는 구개수음 혹은 인두음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국어의 순경음은 ㅂ계열 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ㅅ, ㅈ 계열음은 과거에 ㄴ, ㄷ 계열음보다 잎의 앞부분에서 조음되었다. 한국어의 반치음은 별개의 음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ㅎ 계열음은 답이 없다.
참고문헌
권병로, 박종희 - 훈민정음의 이체자 'ㅇ' 음가
배영환 - 중세국어 후음 'ㅇ'에 대한 몇 가지 문제
백두현 - '훈민정음' 해례의 제자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신승용 - 치음 /ㅅ/, /ㅈ/의 조음위치 이동 원인과 변화 과정
이동석 - 'ㅸ' 포함 어휘의 형태론적 분석
장향실 - 중세국어시기 고유어 표기에 쓰인 ㅸ의 음가에 대하여
정우영 - 순경음비음 (ㅸ)의 연구사적 검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