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도 관심을 - 가야연구 맛보기 (15) : 아라가야의 기원

 안야국(아라가야)의 기원


안야국은 구야국(금관가야), 고자미동국과 함께 변한지역 국가 중에서 그 위치가 확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국가이며 삼국지 동이전에 그 이름이 등장하고 있으므로 서진시기 이전에 이미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국가입니다. 삼국사기 잡지에 함안군이 옛 아시량국(아나가야)의 고지(故地)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 국가가 삼국지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안야국과 동일한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본서기에서는 안라국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안야국의 이 표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삼국지에서는 안야국의 수장이 신지(臣智) 칭호를 내세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축지(踧支)라는 우대 칭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 그 당시에도 이미 우세한 국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진왕이 있던 목지국을 제외한 마한 55국, 진변한 24국을 통틀어 4개 국가만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영남지역에는 구야국과 함께 유이하게 안야국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서기에서는 흠명기 5년 기사에서 임나가 안라국을 형(혹은 아버지)로 삼고 있다고 적고 있어 마찬가지로 이 국가가 높은 위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야국에 대한 고고학 증거의 부재현상

그러나 안야국이 시기적으로도 오래된 국가이며 높은 위세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4세기 이전의 안야국의 실체에 대해서는 모호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4세기 이전에 함안에서 안야국의 모습을 할 수 있는 유물/유적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영남지역의 정치체의 발전 양상은 목관묘/전기와질토기에서 목곽묘/후기와질토기를 거쳐 도질토기와 함께 다량의 철제 무기류가 거대 목곽묘 봉분안에 부장되는 것을 통해 수장층의 성장을 짐작하게 됩니다. 문제는 함안에서 거대 목곽묘가 등장하게 되는 5세기 이전에 별다른 수장층 고분군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후기와질토기 역시 함안 중심지역인 도항리/말산리에서는 별로 출토되고 있지 않으며 김해와 경주가 일찌감치 독자적인 묘제와 도질토기 문화를 발달시키던 시기에 함안은 영남 공통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안야국을 높은 위세를 가진 선진국가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남 공통 토기 양식을 함안식 토기라고 통칭하는데 그 이유는 이 공통 양식 토기가 함안에서 먼저 등장하였으며, 함안에서 거대 가마터가 발견되었고, 대표 표지 유물인 화염형투창고배가 함안지역에 계속 계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염형 투창고배 <국립김해박물관>

이를 모두 만족시키는 설명을 하기 위해서 안야국 중심지 이동설이 등장하였는데, 4세기 이전에 함안 외곽의 황사리, 윤외리의 목곽묘나, 더 멀리는 창원 진동리의 지석묘에서 안야국의 기원을 비정하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리가 읍락국가 수준에서는 상당히 멀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중심지를 그렇게 멀리 이동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참고자료
1. 조영제(2004), "고고자료를 통해 본 안라국(아라가야)의 성립에 대한 연구", '지역과 역사', 14, 41-68.
2. 신경철(2011), "삼국시대 영남의 정세변동과 소가야고분군", '경남의 가야고분과 동아시아', 68-87.
3. 김세기(2012), "아라가야의 성립기반과 영역의 변천", '대구사학', 106, 123-152.
4. 조영제(2013), "아라가야의 고고학", '고고학을 통해 본 아라가야 주변제국',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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