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이제어 논쟁의 종말 (1)
알렉산더 보빈 교수라는 분이 Central Asiatic Language라는 저널에 2005년 기고한 "The end of the Altaic controversy" 논문 번역 내용입니다. 제가 전공자도 아니고 영어도 특출나지 않은지라 오역이 난무할 것입니다만, 현재 알타이제어의 상황 인식에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틈틈이 번역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나는 이 논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다소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지난 10년간 알타이 제어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글을 더 읽었을 때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학문적인 경력은 알타이 가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지만, 최근 4년 동안 나의 생각은 그 가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매우 많은 원인에 의한 것으로,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첫째, Stefan Georg의 훌륭한 논문은 내가 Manaster Ramer와 Sidwell과 함께 저술한 1998년 논문에서 주장한 알타이 제어의 타당성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그리고 훌륭하게 비판하여 여러 면에서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2000년 가을 처음 Georg를 만난 것은 내 연구 방향의 전환점이 되었고, 그 이후로 독일, 일본, 터키에서 이어진 우리의 만남과 토론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소득이었다. 그가 나와 함께한 수년 동안에 걸친 인내심있는 토론 덕택에 나는 투르크어와 몽골어의 구조와 데이터에 대해서 더 나은 이해를 하게 되었으며 이 논문에서 앞으로 보여주게 될 방법론과 데이터 역시 친구이자 동료인 Georg에게 학문적으로 매우 큰 빚을 지고 있다. 두번째로, 나의 알타이 제어에 대한 학문적인 지식은 점진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의 근거는 다양한 언어학적 사실과 데이터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점차 나는 투르크어와 몽골어 데이터가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와 아무런 연관 관계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까지도 나는 퉁구스어가 한국어와 일본어와 연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2002년의 말미에 나는 그것이 단지 환상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나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 역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보이는 유사성은 대부분 오래전에 일본어가 한국어로부터 차용한 것이라는 해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최근에 출판된 알타이어 어원 사전(너무 길기 때문에 앞으로 EDAL이라 하겠다.)은 나에게 (그리고 내 생각에는 많은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알타이 가설은 실패했노라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자료로 안성맞춤인 자료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멋들어진 출판물이 정반대의 목적을 위해 탄생되었다는 점이다-즉, 학계 외부에 알타이어족이라는 것을 소개하고, 계통적으로 관련이 있는 다섯 개의 언어가 이 잠정적인 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다. 저자들의 수고로 탄생한 책을 가지고 우리처럼 이 책의 저자들의 대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알타이제어를 부정하는 근거를 찾아낸다는 점에서 저자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며, 이렇게 중요한 과업은 어떠한 경우에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그들의 성과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음을 말하고 있는데, "알타이제어에 속하는 언어들 사이에 공통어 사전 편찬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타이어 이론이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좋은 증거"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꽤나 문제가 있는 주장으로, 그 실체가 분명한 북 코카시아어를 위한 북 코카시아 어원 사전마저도 현재 전문가들과 다른 언어학 학자들을 전혀 설득하지 못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재미있는 상황의 원인은 내 생각에 EDAL의 저자들이 역사적으로 언어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론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론을 사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EDAL에서 데이터를 설명하기 이전에 정석적인 방법론의 개괄을 다루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이를 통해 주류 방법론이 어떻게 EDAL을 반박하는지 여러 DEAL의 예를 사용하여 보여줄 것이다.
첫째로, 언어 사이에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어도 연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연관 관계가 제안되었을 때 그에 대한 가장 좋은 비판은 그 연관관계를 주장한 언어학자가 엄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연관관계를 주장한 사람이 그 명제를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결론적으로 어떤 연관관계든 그 증명은 매우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이다. 이러한 엄밀한 증명을 하고자 한다면 제안된 연관관계는 어휘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어형 변화 형태에 근거해서 증명이 이루어져야한다. 이는 어형 형태가 어휘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관관계가 반드시 어형 변화를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어형은 형태소 표지보다 차용에 덜 민감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EDAL에서 사용한 방법론은 비교 언어학에서 통용되는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다. EDAL는 어휘 상호비교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는 EDAL이 사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알타이 제어의 형태 비교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설명이 매우 간략하고, 어형 비교는 전혀 제공되고 있지 않아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추측에 맡겨져 있다. 제시되어 있는 형태소 비교 목록은, 내가 감히 단언하건대 그 비교는 부정확하거나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다. 형태소 비교의 대부분은 파생형이 차지하고 있으며 굴절형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고 있지 않다. 파생형은 굴절형보다 훨씬 차용이 쉬우며, 특히 재구된 파생 형태소가 모두 단음절이기에 우연찮게 비슷한 모습을 가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굴절형 중 상당수가 수사(數辭)와 대명사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형태소가 아니라 어휘에 속하는 것이다. 어형 변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지만 그러한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로, 그룹 사이의 비교를 수행하기 이전에 연관관계가 확실한 그룹 내부의 언어 비교를 통한 재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퉁구스어 제어나 방언을 기초로 한 퉁구스 제어 사이의 비교로 퉁구스어 자체의 재구가 완료된 다음 외부 그룹인 몽골어와의 비교가 수행되어야 한다. 어느 언어에서건 그룹 내부의 비교보다 그룹 외부의 비교를 먼저 해야하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관 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먼 언어 사이에서 동일한 형태의 형태소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근거로 입증되지 않은 형태소를 제안하거나 과거의 형태소 형태를 재구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더 나아가 임의의 언어 A의 어휘 *alga의 어근을 *al-ga로 파악하고 언어 B의 어휘 *aldu의 어근을 *al-du로 파악하는 것은 먼저 언어 A와 B에서 접미사 *-ga와 *-du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 연후에야 이 두 언어 사이에 공통적인 *al 부분이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EDAL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제 언어 사이의 비교이다. 저자들은 각 그룹의 언어 재구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 많은 예제에서 저자들은 주어진 언어의 구조나 형태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고 있다. 제시된 알타이어 공통 어원이 각 제어의 어휘와 차이가 나는 것이 꽤나 명백해 보일 때에도, 각 제어의 어휘는 민간어원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기고 무분별하게 배제되고 있다. 오로지 알타이어의 어휘 사전을 만들어 보자는 목적 의식만이 이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을 분이다. 많은 경우 5개의 알타이 그룹 중 오직 한 언어에서만 발견되는 어휘를 근거로 재구 어휘를 제시하고 있는데, 심각한 경우 5개 언어 하위의 한 방언이나 차방언에서만 발견되는 어휘를 근거로 하고 있다. 에벤키어의 북방언에서만 발견되는 어휘만 가지고 이를 원시 퉁구스어에 있던 어원이라고 내세우는 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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