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해수면 변화 2탄

 황상일, 윤순옥 (2011), "해수면 변동으로 본 한반도 홀로세 기후변화", '한국지형학회지' 18, 235~246.


...한반도는 지반운동량이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단히 적다. 한반도 동해안에서 이루어진 해안단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최종 간빙기 이후 평균 지반 융기율은 0.23m/1,000년(황상일 외, 2003), 0.1m/1,000년(오건환, 최성길, 2001) 정도이다. 홀로세 중기 이후 한반도 서해안의 지반운동 속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는 보고된 바 없으나, 한반도 동해안의 평균 지반 융기율은 5,000년 동안 1~0.5m 지반 상승이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제시된 해수면변동 곡선이 복원된 한반도 서해안의 지반운동 속도는 동해안보다 더 느렸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한반도 지반 운동이 해수면변동 곡선의 전체적인 양상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조화룡(1987)은 한반도 해수면변동 연구 결과를 세계 각지의 해수면변동 곡선과 비교하여 홀로세 10,000년 동안 한반도의 지반운동은 거의 고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미량이었다고 평가하였다. (황해에서 지반이 융기 혹은 침강을 통해 해수면이 변동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Park (1969)에 의해 최초로 제기된 홀로세 해침에 의한 황해저의 침강 가능성은 이후 추가적인 연구 결과가 보고되지 않았으며, 동해안과 서해안의 해수면 변동에 대한 다른 연구(조화룡,1987)에 의하면 황해와 주변 지역의 하이드로 아이소스타시 가능성(지반 침하 지역에 물이 흘러들어오게 되었을 때 그 물 무게 때문에 추가로 지반이 침하되는 현상)은 매우 낮다...<중략>
한반도에서 7,000년 전 경에 해수면은 거의 현재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6,000~5,000년 전에는 현재보다 0.8~1.0m 더 높았다. 해수면이 현재보다 더 높은 것은 기온이 현재보다 더 온난하였음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6,000~5,000년 전 기온은 현재보다 1.5~2.5℃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4,000년 전 경에는 해수면이 6,000~5,000년 전에 비해 약간 낮아졌으나, 하강한 양은 퇴적상에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하였다. 이 시기 한반도 해수면 변동량과 중부 유럽의 기온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당시 한반도의 기후가 현재와 유사하였는지 또는 유럽의 경우와 같이 현재보다 냉량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에 한계가 있다.
2,000~1,800년 전에는 해수면이 홀로세 동안 가장 높았으며 현재보다 1.1~1.3m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이 시기에 한반도가 6,000~5,000년 전보다 더 온난하였는가에 대해서는 화분분석을 비롯한 다양한 고 기후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시기는 현재보다 더 온난하였으며 고고학 연구 결과로 볼 때 AD 5C까지 온난한 시기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홍성찬, 최정헌, 김종욱 (2010), "홀로세 중기 이후 신두리 해안사구의 성장: 기후변화 및 해수면 변동과의 관련 가능성", '한국지형학회지' 17, 87~96.

... 본 연구가 진행된 총 600m 가량의 단면에서 OSL 연대가 가장 내륙방향의 지점에서 6800년 전, 해안선에 가장 가까운 지점은 700년 전으로 측정되어 이 단면의 퇴적층은 내륙에서 해안쪽으로 전진하며 성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퇴적층이 내륙에서 해안쪽으로 전진하며 성장한다 = 해안선이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다 = 해수면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혹은, 적어도 상승하지는 않았다.)
각 지점의 해안선으로부터의 거리와 OSL연대를 살펴보면 가장 내륙인 6,800년의 연대를 지시하는 시점을 제외하고는 700~3700년 전 동안 비교적 일정한 성장률(46.7m/1,000년)을 보인다. 따라서 가장 내륙의 6,800년 전과 해안쪽으로 20m 떨어진 3,700년 전의 OSL 연대 사이에 이 지역에서 퇴적환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OSL 연대측정 결과는 대상단면이 기존 연구의 약 6,000년 전의 시기의 고해면기 이전의 퇴적층과 이후의 퇴적층으로 나눌 수 있으며 주로 고해면기 이후 해수면 하강이 일어나는 동안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4,500년 전 이후로 한랭 건조한 기후로 변하게 되면서 퇴적물 공급이 왕성하게 일어나 해안사구의 수평적 성장은 집중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략>


이동주 (2008), "기원전 2000년경 해수면 상승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 -남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동북아 문화연구' 16, 57~81.

... 이와 함께 이 시기 요동반도를 중심으로 발해만 일대에서도 해수면 상승현상이 확인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이를 소개한 조빈복의 견해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유적의 입지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주목하고,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유적들은 대부분 평지와 낮은 대지 위에 형성되어 있는 반면, 신석기시대 마지막 단계와 청동기시대 초기 단계는 모두 상당히 높은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당시 큰 규모의 해침(海浸)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유사한 편이다. 중서부지역의 경우 신석기후기 단계가 되면 유적의 입지가 충적지에서 구릉상에 위치하는 것이 급증하고, 이는 무문토기시대의 유적 입지와 유사하다고 지적한 견해가 있다. 임상택, 2006)
둘째, 요동반도의 대호산 부근의 왕타자 일대에 위치하는 패총제방의 경우 현재 바다에서 15km 정도 지점에 위치하는데, 이 패총 제방의 절대연대는 4,300년 전으로, 이 당시 해수면이 이 일대까지 도달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신분현의 단타자유적은 해발 10m 지점에 위치하는데, 문화층 상면에서 해수 침식층과 다 자라지 않은 조개껍질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이 후기에 바닷물의 침범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4,000년 전 경에 해수면 상승 고도는 10m 이상이었음을 증명한다고 하였다. 이 때는 바로 신석기후기 단계에서 청동기시대 초기 단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해당하며, 이 때 요동반도 황해연안에 바닷물이 증가하고, 이로 인하여 당시인들이 거주지를 평지에서 높은 산 정상부로 옮겨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남해안지역에서 확인되었던 첫 번째 해수면 상승기는 발해만 일대와 동일한 4,300년 전 경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으며, 2번째 해수면 상승기인 4,000년 전 경에서 3,500년 전 사이도 시기 폭을 좀 더 좁힐 수 있다.

1줄 요약 : 기원전은 지금보다 따듯해서 해수면이 지금보다 더 높기 때문에 현재 물 밖에 드러나 있는 바닷가 저지대가 오히려 당시에는 바닷물 아래에 있었음. 따라서 현재 바다인 곳은 기원전에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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