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ve american의 인구 감소의 원인은 무엇인가? - Eroica님의 글에 덧붙여.

 요즘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 덕분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병을 컨트롤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인간이 탐구하고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한 것이겠죠. 역사적으로도 역병이니 전염병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작게는 위대한 위인이 유명을 달리하고 크게는 사회 공동체가 붕괴하고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하면서 세계구급의 영향을 끼친 예로 유럽의 흑사병, 근현대 시기의 스페인 독감과 더불어 대항해시대와 더불어 초래된 신대륙-구대륙 간의 질병 교환과 그로 인한 재앙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기간 고립되어 지내던 신대륙의 인간과 구대륙의 인간이 접촉하면서 그 동안 서로 접해보지 못했던 질병과 마주하게 되면서, 신대륙은 그 동안 구대륙이 차곡차곡 쌓아놓은 천연두, 홍역, 콜레라 등등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게 됩니다. 과연 신대륙인들의 몰락의 원인은 치명적인 구대륙산 병원균 때문인가 봅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구대륙 사람들이 그 동안 치명적인 병원균에 노출된 덕분에 어느 정도 저항성 형질이 인구집단에 퍼져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대륙 사람들 역시 천연두, 콜레라, 디프테리아에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흑사병에 단련된 덕분에 의도치않게 유럽인의 1% 정도는 AIDS에 자연적으로 면역이 존재하지만 나머지 99%는 여전히 병원균에 취약한 (업자 용어로 susceptible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AIDS 면역 형질은 반대 급부로 다른 질병에는 취약해진다니 역시 진화의 세계는 공짜가 없네요. 물론 신대륙 사람들은 소수의 집단이 베링해협을 건너 들어와 유전적 병목기를 거쳤기 때문에 구대륙 사람들보다 다양성이 더 부족한 측면은 있죠. 하지만 아무리 치명적인 질병이라도 그 질병을 견뎌낸 사람들에게는 면역이라는 선물이 주어지고, 인구밀도가 감소하면 질병의 확산이 감소하므로 종족 전체가 싸그리 멸망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병원균도 다음번 감염자를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재의 환자를 죽여버리면 그 병원균 역시 다음 대를 남기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므로 병원균의 병원성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감소하게 됩니다. 한센병이나 매독이 그와 같은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중이고요.

물론 구대륙산 질병이 신대륙 사회에 큰 생채기를 낸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구감소는 인류 역사상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원래의 인구를 회복하는 것 역시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해 나갔고, 결코 예전의 인구를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가공할만한 구대륙 질병 칵테일의 위력 때문만일까요.

기록은 히스파니올라 섬에 전염병이 대유행하게 된 시기를 1518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콜럼버스가 왔다 간지도 어언 20여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물론 그 동안 케찰코아틀님의 마지막 힘으로 구대륙의 질병 전파를 조금이나마 유예하게 된 행운이 겹쳤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하지만 2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천연두를 비롯한 구대륙 질병이 전파될 건수는 없었던 걸까요? 인간 사이에서만 전파되는 천연두를 제외하고도 치명적인 인수공통 전염병은 진작에 들어온 돼지, 말과 같은 가축을 통해서 이미 보드라운 신대륙에 발을 디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파니올라 섬의 원주민들이 각종 질병으로 멸종되기에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질병은 모름지기 인구가 좁은 공간에 과도하게 밀집되거나 영양 상황이 악화될 때 일어나는 법, 과연 원주민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ATM Okuno와 D Ventosa-Santaularia는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 감소가 전염병 때문인지, 과도한 착취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스페인 정복 시기의 임금을 추적했습니다. 만약 전염병 때문에 인구가 감소되는 것이라면 인구 감소로 노동력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므로 임금이 상승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과도한 착취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면 임금이 인구가 감소하든 말든 나몰라라 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가정하에 스페인 정복 후 임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페인 정복 이전의 멕시코 인구가 과장되게 추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적당히 줄여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인구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아래 그림 3에서 부부가 맞벌이를 하더라도 1550년까지는 자식 한명 키우기도 빠듯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당시의 임금 추정치와 그 임금으로 획득할 수 있는 열량 추정치를 다르게 계산한다면 스페인 식민정부가 넉넉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음에도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해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노동 생산성이 증대되고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받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전염병이 창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봅니다.

즉, 아메리카의 인구 감소의 원인은 오로지 전염병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원주민들이 전염병에 더 취약하게 만든 스페인 식민 정부의 통치에도 주목해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고자료.
1. ND Cook (2008), Disease and the depopulation of Hispaniola, 1492-1518, Colonial Latin American Review, pp213-245
2. ATM Okuno and D Ventosa-Santaularia (2010), Fall in the Indian population after the arrival of the Spaniards. Diseases or exploitation?, investigacion economica, pp87-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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