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중간 고대사 논쟁 상태.
오대양 (2018) - "산동 악석문화의 최근 연구동향과 쟁점 -우리 상고문화의 영역에서 작용되는 몇 가지 문제에 관하여-", '한국상고사학보', pp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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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이관련 연구의 비판적 검토현재 중국학계에서는 용산Longshan-악석Yueshi 문화로 연결되는 산동지역 신석기~초기 청동기시대유적을 동이문화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당시에 과연 사회·정치·문화적으로 단일한 종족적 개념으로서의 동이관념이 존재하였을 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같은 책(중국 산동지역의 동이)에서 박선미는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대역사를 재해석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 민족을 형성한 대표적인 고대 종족으로서 동이를 강조하다가 최근에는 한족漢族이 동이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점, 이는 곧 동북 동이와 산동의 동이를 동일한 계통으로 강조함으로써 중국 민족사의 범위를 확대하고 변경지대에 대한 영유권의 전통을 강조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박선미 2018: 45).반면 국내 일각에서는 이상 중국학계의 연구성과를 오인하여 고대 산동지역의 동이를 한민족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여기에서는 산동의 동이족과 동북 동이를 같은 계보로 파악하는 한편 중국 고대의 성인들인 요, 순, 치우, 공자 등이 산동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한민족의 조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들의 연구는 사료의 오독 혹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지적에 직면하여, 다양한 고고학적 성과들을 근거로 제시하곤 있지만 동이집단 혹은 그 문화의 내용과 구성, 위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작업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꾸준히 비판받고 있다.(기수연 1992: 8; 오강원 2012; 2015) 이외에 국내 고대사학계의 몇몇 원로들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동이족의 이동과정을 설명한 바 있는데, 상고시기 중국의 북변에 거주하였던 동이계 종족들의 이동과정 중 한 갈래가 중국 산동 방면으로 이주하면서 상대의 한족과 교섭하였다거나(김상기 1948; 1954; 1974: 369-425), 상말주초의 기자집단을 산동에서 동북으로 이동한 동이집단으로 파악한 사례(천관우 1974: 2-72)가 대표적이다. 이상 산동지역의 동이를 한민족과 동일시하는 인식은 1935년 중국에서 발표된 부사년傅斯年의 『夷夏東西說』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傅斯年 1935; 정재서 역주 2011: 51 참조). 바로 이글에서 하족夏族과 이족 夷族이 중원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서로 번갈아가며 왕조를 세웠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사년이 언급한 이夷와 하夏의 투쟁은 현대 중국민족을 구성하는 주요종족 중 하나로서의 이夷와 하夏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지 고대 중국의 동이를 한민족과 동일시하여 한민족과 중국민족의 대립구도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이유진 2010: 240). 아울러 부사년이 제시하는 동이담론과 역사인식에는 중국이 동아시아 문화의 종주국이라는 패권의식이 전제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다(이병호 2008: 246-247; 오대양 2017a: 23-25).
China : 한국의 고대 종족은 우리 사서에 나오는 동이 집단의 후예라 해~. 사서에서 나온대로 산동 용산-악석-요남 쌍타자-요북 쌍방문화로 이어지는 것이 고조선의 역사라 해~. 그러니까 황하 문명에 속하는 애들이라 해~.
재야사학 : 오케이. 한민족 동이설 받고, 너네들이 종가집이 아니라 우리가 종가집임. 오오 중국의 원 주인 한민족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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