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 (6) - 후리Houli/북신Beixin 문화
Houli culture는 산동지역에서 성립된 신석기 문화 중 가장 이른시기의 문화입니다. 황하 중류 지역의 신석기 문화와 마찬가지로 Houli 문화에서도 초보적인 기장 농사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요하에서 작물화된 조粟도 산동지역에서 재배되었습니다. 산동성 Linyi臨沂시 페이費현의 Yuezhuang月莊 유적에서는 벼의 낱알이 발견되어 산동지역과 양자강 중류 사이의 교류의 증거 역시 관찰되고 있습니다. 유적지에서 돼지뼈가 빈번하게 출토되어 돼지를 특별히 즐겼거나 돼지 사육이 시도된 흔적으로 생각됩니다. 토기 중에서는 가마솥이 상당히 많이 발견되어 식생활을 짐작케 해 줍니다. 그 외의 토기는 별다른 장식 없이 간단한 편으로 상대적으로 토기 생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보입니다.
Houli culture의 정착지는 해자로 둘러싸인 형태임이 드러나 고고학자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해자의 폭은 넓은 곳은 40m, 좁은 곳은 4m 정도로 깊이는 2.5m에서 5m에 이릅니다. 이는 Houli culture의 시기에 군사적인 충돌 위협이 대두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집자리 유적 중에서 화덕이 있는 집과 화덕이 없는 집이 존재하는데 화덕이 없는 집은 생활 공간이 아니라 토기나 석기 제작 같은 특수한 일을 하거나 물품을 보관하던 공간으로 생각됩니다.
Houli culture는 이후 Beixin culture로 이어집니다. Beixin culture에서는 토기 생산 방식이 매우 향상되었습니다. 이런 토기 제작 방식의 일신이 황하 중류의 Peiligang culture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며, 더 나아가 Peiligang에서의 산동지역으로의 이주민이 Houli culture에서 Beixin culture로의 전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아직은 확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Houli culture에서는 종종 등장했던 여러 개의 화덕을 갖춘 큰 집이 Beixin culture에서는 소멸하며 상대적으로 작은 집의 한 가운데에 하나의 화덕만 갖춘 반지하식 집을 짓게 됩니다. 일반적인 생활은 대가족이나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지겠지만 혈연 집단의 최소 단위로 핵가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매장문화에서 Beixin culture가 Houli culture 시기보다 약간 더 많은 껴묻거리를 보이고 있을 뿐, 여전히 별다른 부장품이 없습니다. 약간의 도구나 개인용품, 옥기 등이 출토되는 정도입니다. 계급의 분화는 Houli/Beixin culture 모두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산동지역에서 오랜 기간 관찰될 풍습이 Beixin culture 시기부터 등장합니다. 첫번째로는 발치 풍습으로 두번째 윗앞니 두 개를 뽑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무덤이나 집자리에 희생양을 묻는 것으로 특히 동물의 턱뼈를 함께 묻어주었습니다. 거북의 등껍질을 함께 묻어주는 양상도 관찰됩니다.
참고문헌
W Fen (2013) - The Houli and Beixin culture, A Companion to Chinese Archa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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