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체계의 본질적인 문제는...

 그 동안의 훈민정음 체계에 대한 비판은 15세기에 사신 세종대왕이 컴퓨터를 예언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 (완성형 vs 조합형, 그리고 조합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옛 자모와 복자음, 복모음 등등), 글씨 크기가 작은 문자 환경 시대를 예언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할 수 없는 해상도의 문제 (예를 들어 홋카이도와 훗카이도, 버섯모듬과 버섯모둠 etc), 죽간으로부터 기원하여 동아시아 표준이 된 세로쓰기가 더 큰 표준인 가로쓰기 라틴 자모에 밀릴 것을 예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할 수 없는 위에서 아래로 조합하는 글자 형태를 비판하는 것에 불과해 그동안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훈민정음의 문제는 세종대왕님의 세계관에 기인한, 자음은 5 element, 모음은 3 element로 구성되어 있다는 훈민정음 제자해 공리체계에 있습니다.


1. 자음은 왜 5 element이어야만 하나.

중국의 음운학자들이 자음을 순음, 설음, 치음, 아음, 후음으로 정리하긴 하였지만 순음은 중순음과 경순음으로 나뉘어지고, 설음은 설상음과 설두음으로 나뉘어지고, 치음은 치두음과 정치음으로 나뉘어진다라는 것 역시 중국 음운학자들이 이미 보고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세종대왕께서는 순음, 설음, 치음, 아음, 후음에 하나의 기본 자형만 배당하고 경순음과 치두음, 정치음은 기본 자형의 변이형으로 처리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삼십육자모를 충실히 반영하여 중국 음운학자들이 찾아놓은 음에 대해 기본 자형을 만들어 보셨다면 적어도 현대 중국어 자모는 한글로 그대로 전사가 가능했을 겁니다.

2. 모음은 왜 3 element이어야만 하나.

사실 자음의 문제는 생각외로 큰 문제는 아닙니다. 확장형이긴 하지만 그래도 경순음, 치두음, 정치음에 해당하는 자음은 고안이라도 하셨잖아요? (물론 설상음/설두음 문제는 씹으셨지만) 모음은 3 element를 설정하셨는데 ㅣ모음은 잘 설정하셨지만 다른 2 element는 하필이면 ㆍ와 ㅡ를 설정하셨는데 후대에 ㆍ자리는 ㅓ가 먹어버린 건 예측 불가능한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만 합구 모음을 중국처럼 분리하지 않고 ㆍ와 ㅡ의 조합으로 처리하시는 바람에 많은 언어권의 모음을 처리하기 어려운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근대국어에서 ㅚ, ㅟ가 알아서 œ, y 자리에 들어가고, ㅐ, ㅔ가 알아서 æ/ɛ, e 자리에 들어간 덕분에 우연찮게 해결이 되었습니다만...

2.1 반모음(개음) -j-는 별도의 확장형을 만들 수 있게 하였으면서 -w-는 확장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나.

중국 음운체계처럼 합구/개구 구별 표시를 따로 만드셨으면 '사귀다', '바뀌다'의 축약형에서 등장하는 ㅟ의 접근음 ɥ을 표기할 방도가 있었겠죠.

그러면 이런 공리 체계를 불러온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이냐? 그건 바로 중세 한국어가 그 모양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가 아랍어처럼 인두음이 풍부하거나 연구개음과 구개수음, 성문음을 구별하였거나 권설음이 있었거나 근대국어처럼 단모음이 10개가 넘어가거나 모음 대립이 고작 ㅏ/ㅓ, ㆍ/ㅡ, ㅗ/ㅜ만 있던 것이 아니라 합구/개구의 다양한 대립이 있었거나, 어두자음군/어말자음군이 다양하고 복잡했으면 결과는 달랐겠지요. 그러나 대왕님이 보시기에 자음은 5개의 기본자형 확장형으로, 모음은 3개의 기본자형에 1차조합 4개(ㅏ,ㅓ,ㅗ,ㅜ)와, -j-를 위한 별도의 표기 정도만 있으면 되니 그 수준이 된 겁니다. 그리고 세종대왕께서는 전통적으로 숭상하던 숫자 2, 3, 5에 딱 떨어지게 만든 것에 꽤나 흡족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대 중국어 수준으로 음소가 개판이었으면 세종대왕의 천재성을 다른 측면으로 좀 써 먹을 수도 있었을텐데 개인적으로 그게 좀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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