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승은 과연 한반도 내 소수민족의 이름인가

 2. 在家僧의 언어 


‘在家僧’에 대해서는 민속학이나 불교사에서 주목해 왔다. 여진족의 후예라는 설 외에 그들의 특수한 신분, 거주 지역, 문화가 일반인들과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하였으나 아직 직접 조사할 기회는 얻지 못하였다. 필자가 본 재가승 관련 연구는 재가승의 유래와 그 민속에 대해 논의한 황철산(1960),이강렬(1985)이다.33) 이들 연구에는 민속과 관련된 재가승의 언어가 수록되어 있는데 필자가 조사한 함북방언과 별 차이가 없다. 황철산(1960)은 재가승의 유래에 대한 제설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여진족의 후예거나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재가승이 일반인들과 어울려 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일제강점기부터이므로 만약 그들의 언어가 일반인들의 언어와 달랐다면, 함북방언과 다른 특이점이 나타났을 것이나 그러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황철산(1960)은 재가승의 민속과 관련된 아래 (3)의 몇 단어를 여진어와 관련짓고 있다. 

(3) 쓸(갈래, 편) - 만주어 silba(同姓). cf. 나그네쓸/우리쓸(외지 사람/우리쪽 사람). 
오로시(가죽신) - 우라화(烏拉靴)에서 유래. 
도레기(가죽신: 오로시에 신 등(靴靿子)을 댄 것) - 만주어 투레(ture) 
살궁(살강) - 만주어 사르후(sarhv) 
주지춤, 주지놀음, 어베주지 - 만주어 주춘(jucun) 

필자가 조사한 함북방언의 ‘쓸’은 ‘①여울[灘], ②형세나 판국, ③혓바늘’의 뜻을 갖는 동음이의어이다. 따라서 위 ‘쓸’은 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오로시’와 ‘도레기(다로기)’는 小倉進平(1927), 이기문(1991), 곽충구(2006)에서도 그 어원에 관심을 둔 바 있으나 어원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위처럼 ‘오로시’를 ‘우라’와 관련짓는 것은 모음 대응에서 문제가 있다. ‘도레기(<도뢰기)’는 ‘도로기(<오기)’의 움라우트형인데 만주어 ture와의 음운대응(-u)이 석연치 않고 ‘도레기’의 두 번째 음절 모음 /ㅔ/는 본디 /ㅗ/이다.34) ‘살궁’은 ‘살강’의 변음일 것으로 생각된다. 주지춤, 주지놀음의 ‘주지’가 ‘놀이’를 뜻하는 만주어 ‘주춘’에서 온 말일 것으로 보았으나 ‘주지’는 보통 ‘사자’로 보므로 너무 거리가 있다. ‘어베주지’는 ‘에비’와 같은 말이므로 역시 거리가 있다. 이 밖에도 만주의 유습일 것이라 추측하고 그와 관련된 단어를 제시하였으나 만주어는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황철산(1960)에 제시된 아래 (4)는 흥미로운 예이다.

(4) 임숙(필자 조사: ‘인슉’. 혼인 때 신부를 인도하거나 옆에서 거드는 여자). cf. 인숙, 인숙어미(이강렬: 1985). 

(4)의 ‘임숙’ 또는 ‘인숙’을 필자는 ‘인슉’으로 조사하였다. 成俔의 󰡔慵齋叢話󰡕에는 만주족의 혼인 풍속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 속에 ‘引屬’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이 어린 여자를 단장하여 引屬이라 하고, 引屬은 신부에게 예절과 법도를 가르쳐 준다.”고 하였다.35) 필자가 조사한 ‘인슉’은 혼인 의식에서 신부를 안내하는 여자를 일컬어 뜻이 유사하다.36) 함북 종성군 출신의 제보자는 ‘인슉’이라 하고 함북 경흥군 출신의 제보자는 ‘윤식’이라 하여 서로 달랐다. 이 ‘인슉’은 여진어-만주어에서 차용한 말로 보인다.한편, 이강렬(1985)는 황철산(1960)과 논지가 비슷하다. 그 논문에는 50여 항의 재가승 어휘가 소개되어 있는데 대부분 필자가 조사한 육진방언과 같으며 여진어는 아니다. 제시한 자료에는 간혹 표기의 오류가 있고 일부는 표준어로 표기가 되어 있다.37) 예: 가락떡(필자:가랖떡), 누이바꿈(필자: 느비바꿈), 투전놀이(필자: 슈쳔, 쉬쳔), 궁재(필자: 군재, =작은연자매. =한어 磙子[gǔnzi]) …….

<중략>

한편, 재가승 관련 논저들에서 여진어일 것으로 추정한 재가승의 어휘를 살펴보았는바, 그러한 어휘는 대체로 여진어의 잔재라고 볼 만한 근거가 박약하다. 적어도 20세기에 조사된 재가승의 언어는 함북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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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황대화 편(2011: 293, 317)에는 1960년에 김일성대학 학생들이 재가승 마을에서 조사한 자료가 있는데 함북방언과 차이가 없다. 조사지는, 함북 종성군 풍계리 진동 마을, 회령군 무산리 쏙새골 갈매덕 안전거리 마을. 
34) 황철산(1960)에서는, “靴靿子 즉, 우라화의 등을 <투레>라고 한다. 그렇다면 함경도에서 <오로시>에 특히 등(靴靿子)을 붙인 것을 <도레기>라고 한 것도 그 어원이 <투레>에서 온 것임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35) 其婚姻也 納牛馬數十頭 方與定約婚 隣里之人皆來 盛飾新婦而出謁 又飾年少女名曰引屬 引屬敎新婦禮度(󰡔慵齋叢話󰡕 卷 10).
36) ‘인슉’은 평소에 몸가짐이 깨끗하고 첫아이가 아들인 여자 중에서 고른다.
37) 수록된 어휘 정보(조사 시기, 제보자, 조사 지역 등)이 전혀 없다.


곽충구(2015) - "육진방언 어휘의 잔재적 성격", '진단학보' 125, 183-211.


재가승이 한반도내 여진족이었다는 둥, 소수민족이었다는 둥 같은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웹에서 떠도는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실체 증거를 파 보면 나오는 것은 먼지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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