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어족의 고향과 그에 대한 고고학적 관점 (4)

 The Indo-Europeanhomeland from linguistic and archaeological perspectives

DW Anthony and D Ringe

Annu. Rev. Linguist.,2015, 1(13) 1-21.

 

 

3. 원시인구어 초원 고향설이 가지는 여러 지리학적 장점과 우랄어 차용어

 

원시인구어가 사용된 지역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표는 원시인구어와 원시우랄어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이들은 기초어휘에서 의미심장한 유사성을 보이며(‘이름’, ‘’) 대명사도 서로 비슷하다대명사명사어미기초 어휘의 공유는 원시인구어와 원시우랄어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 준다  원시 언어들은 매우  옛날, 아마도 플레이스토세 말기의 수렵인이 썼던 말을 공통조상으로 하는 후계자일  있다. Nichols(1997) 이처럼 언어의 시원과 관련하여 연관성을 보이는 경우에 대해 quasi()-stock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안타깝게도 그런 본질적인 관계를 풀어내는 것은 최첨단의 통계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도-우랄어라는 것이 가능한 어족인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전문가들은 원시인구어와 원시우랄어 사이에 문화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인정한다적어도원시인구어의 팔다 씻다 해당하는 어휘는 원시우랄어에서 차용한 것이다. ‘가격 끌다이끌다 관련된 어휘는 원시우랄어의 자손인 원시 -우그르어에서 빌려왔으며아마도 교역 과정에서 차용되었을 법하다원시우랄어는 삼림지역의 수렵 채집인의 언어로개를 제외한 가축의 어휘는 가축을 기르는  익숙한 원시인구어에서 넘어왔으며 이는   언어가 접촉했을  기대되는 양상과 일치한다.

 

  어족이 공통 조상을 공유할 가능성이나 상호 어휘 차용 가능성은 원시인구어의 고향이 원시우랄어의 고향에 가까움을 생각하게 한다원시우랄어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논란 중이나 우랄산맥의  기슭에서 수백 킬로미터 안의 삼림지역으로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Mallory(2001) 북부 삼림 지역을 횡단하는 우랄어족의 확장은 우랄 지역의 수렵채집인들이 초원/삼림 초원 접경지역에서 접촉한상대적으로  복잡하고 계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던 원시인구어 사용자나 후대의 인도-이란어 유목 사회로부터 부분적인 자극을 받아 이루어진 사회구조적 변화의 결과물이라 주장한다원시인구어와 원시우랄어 사이의 관계성은 원시인구어의 고향을 아나톨리아가 아닌 북부 삼림지역 근처에서 찾아야 함을 역설한다.

 

마찬가지로 원시인구어는 코카서스 어족특히 원시 Kartvelia어와 어휘교환이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언어는 코카서스 인접지역에 있었다흑해-카스피해 연안 초원은 코카서스와 우랄 삼림지역 사이에 있어 이웃언어들과 어휘를 교환했거나 혹은 동일 공통조상의 자손언어임을 보여주는 자료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지역이다원시인구어 사용자들은 소나 양의 목축유제품모직물농경마차벌꿀술말과 익숙한 사람들이므로 기원전 2500 이전에는 우랄 산맥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오지 못한 것을   있다왜냐하면 Botai 문화에서는 말과 개를 제외한 가축이 없어 우랄 동쪽에서 기원전 2500  //소를 이용한 목축이 존재할  없기 때문이다야생 꿀벌의 서식지로 가장 알맞은 보리수나무나 떡갈나무  역시 남부 우랄산맥의 동쪽에서 끝난다코카서스의 북쪽과 우랄산맥의 서쪽북부 삼림지대에 접한 초원이  모든 내적 증거를 만족시키는 원시인구어의 고향이다 것과 관련된 어휘와 원시인구어-원시우랄어원시인구어와-원시카르트벨리아어와의 차용 어휘의 증거와 일치하는 조건은 시간적으로는 기원전 4500-2500 사이지리적으로는 흑해와 카스피해의 초원 지역이다.

 

다른 식으로 생각하더라도 동일한 지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Mallory(1997) 원시인구어의 고향이라면 다섯 가지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가지가 지리적인 조건에 관한 것이다첫번째로 시간적/공간적 타당성 검증을 원시인구어 아나톨리아 기원 가설은 만족시킬  없는데 시간적으로  가설은  것과 관련된 어휘를 설명할  없고공간적으로 아나톨리아 신석기 언어가 원시우랄어와 접촉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Mallory  번째 원칙은 관계성에 관한 것인데 원시인구어 고향 후보지는 언어학적으로 재구성된 인구어의 계통수(系統樹) 지역/지역간 고고학적 문화 관계를 만족시킬  있는 조합이어야 한다아나톨리아 가설은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렵다신석기 이주 양상을   아나톨리아에서 그리스로 이동하는 것을   있는데그렇다면 그리스어가 아나톨리아어와 유사하고서부 지중해의 신석기 언어(고대 이탈리아어나 켈트어?) 그리스어와 유사하며 그리스어는 인도-이란어와는 꽤나  관계라 예측할  있다하지만 실제로는 그리스어와 아나톨리아어는 유사하지 않고그리스어는 켈트어나 이탈리아어와 유사하지 않으며그리스어와 인도-이란어는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그리스-아리아어 혹은 인도-그리스어와 같은 용어가 통용될 정도이다.

 

흑해-카스피해를 인구어족의 고향으로 한다면 알려진 인구어 사이의 관계를 만족시킬  있는데인구어족의 가장 오래된  가지의 분리와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순차적인 이주 양상이 흑해-카스피해 초원지역에서 주변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기원전 4200-4000  ()-아나톨리아인이 초원에서 서쪽방향으로 남동부 유럽으로 분리되어 나갔다. Suvorovo 이주라 하며 고고학적으로 확인 가능한 초원으로부터의 최초의 이주이다.(Bicbaev 2010)   -토하라인이 분리되는 기원전 3300  Afanasievo 이주라고 불리는 흑해-카스피해 초원에서 서부 알타이 산맥으로의 이주양상이 관찰된다이는 토하라어가  번째로 분리된 언어라는 예상과 일치하는 것이다이후 서부 유럽인 가지가 서쪽으로 갈라져 나오는데카르파티아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도나우  상류로 이동하는 기원전 3100-2800 경의 Yamnaya 이주와 산맥 북쪽 기슭을 따라 남부 폴란드로 향하는 기원전 3300-3000 경의 Usatovo, Tripolye C2 문화 확장이 그것이다이는 이탈리아어와 켈트어(그리고 아마도 -게르만어) 조상이 상당히 복잡한 이주 양상과 그로 인한 언어확장 결과로 분리되었을 것이라는 설명과 일치한다기원전 2000년대 인도-이란어가 초원에서 중앙아시아이란남아시아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Renfrew Plan B 가설과 같다원시인구어 초원 고향 가설은 고고학적 증거로 제안된 이주 방향과 언어학적 증거로 제안된 이주 순서가 보여주는 고고학과 언어학 사이의 관계를 훌륭히 만족시킨다.

 

<1. Suvorovo 이주. 아나톨리아어족의 분리. 2. Afanasievo 이주. 토하라어의 분리. 3a. Yamnaya 이주. 이탈리아어-켈트어의 분리. 3b 게르만어의 분리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Mallory 마지막 조건은 고고학적 타당성 항목으로 언어 변천을 유도할 만큼의 충분한 수준의 경제적 변화나 위세 상승 양상을 확인할  있는 고고학적 물질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는 아나톨리아 가설의 가장  장점으로 고고학적으로 유전학적(사람 DNA 통해)으로 명백히 인정되는 것으로 유럽 대륙을 관통해 광범위한 언어 변천이 있었음이 확실하다그러나  언어 변천을 유도한 언어는 -인구어에 속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석기 이후 기원전 3000-2500 전에 일어난  다음 수준의 경제적/사회적인 변화는 유럽 전지역을 휩쓴 것은 아니긴 하지만 훨씬 유동적이고 일시적으로 정착하는 생활 양식의 도입과 관련되어 있다이는 서유럽에 바퀴 달린  말의 가축화모직물구리 제련이 도입되는 것과독립장을 조성하는 고분술잔의 기호 장식(그리고 아마도 축제 문화), 풍부한 무기 부장 문화를 보이는 Yamnay, Corded Ware, Single-Grave, Bell Beaker 문화층과 일치한다동시에 유럽 신석기인 DNA 표지는 감소하고 동쪽에서 중부 유럽으로 이주해온 Corded Ware 문화의 확장과 관련된 초원 DNA 표지가 등장하여 현대 유럽인의 유전적 구조가 형성된다운송 혁명모직물제련정착지 이주자급자족 경제정치 구조전쟁과 같은 것은 Sherratt(1997) 음주 혁명과  부산물이라 생각한 것과 다를  없지만 그가 이를 아시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긴 것과 달리 우리는 이를 후기 원시인구어 사용자들이 서쪽 방향으로 확장되어 나갔기 때문으로 생각한다이는 다른 유럽 문화가 그와 같이 발달하기 이전에 초기 청동기 문화가 초원 사회에서 발달했으며높은 기동성에 적합한 정치와 의례 체계가 등장했고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사회 양식이 그대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초기 인구어 사회는 명성과 위세를 통해 집단을 유지할  있도록 하는 관습을 발달시켰으며인구 밀집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대면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만나는 관계였다 새로운 제도의 등장을 증명해 주는 원시인구어 어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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